서 론
급성 췌장염에 의한 정맥 합병증은 주로 간문맥, 비장정맥, 상장간막정맥 혈전증으로 나타나며, 빈도는 매우 드물지만 발생할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1-3]. 다른 부위의 정맥 혈전증의 발생기전과 마찬가지로 혈류의 정체, 염증, 혈액의 과혈전생성 성향(hypercoagulability) 등이 원인이 된다[4]. 이러한 혈전증은 무증상에서부터 장허혈 및 장괴사에 따른 복막염 등 다양한 임상 경과를 보이며, 치료도 보존적 치료에서 수술적 치료까지 다양하지만 아직까지 확립된 치료법은 없다[3,4].
급성 췌장염에 합병된 정맥 혈전증은 발생 빈도가 드물며[1-3], 국내에서는 8예가 보고되었고[5-12], 간문맥과 비장정맥 모두에서 발생한 경우는 국내에 지금까지 2예만 보고되었다[7,9]. 이에 저자들은 2주간의 저분자량 헤파린 투여와 3개월 간의 경구 와파린 항응고요법으로 치료된 급성 췌장염에 동반한 간문맥 및 비장정맥 혈전증 1예를 경험하여 이를 문헌 고찰과 함께 보고한다.
증 례
43세 남자가 내원 하루 전일 갑자기 발생한 상복부 복통을 주소로 외래를 통해 입원하였다. 과거력과 가족력은 특이사항이 없었다. 약 20년간 매일 소주 1~2병 정도 마셨고 30갑년의 흡연자였다. 내원 시 급성병색을 띠고 의식은 명료하였으며 활력징후는 혈압 110/80 mmHg, 맥박수 110회/분, 호흡수 20회/분, 체온은 36.5oC였다. 신체검사에서 장음은 들리지 않았으며 좌상복부에서 심한 압통이 있었고 촉지되는 종물이나 장기는 없었다. 호흡음과 심음은 정상이었고 사지와 몸통에 피부 병변은 없었으며 양측 상하지의 신경 이상 소견도 없었다.
내원 시 말초혈액검사에서 백혈구 19,970/mm3, 혈색소 17.2 g/dL, 헤마토크리트 50.1%, 혈소판 196,000/mm3이었고 혈청 생화학 검사에서 AST/ALT 64/35 IU/L, ALP 261 IU/L, GGT 295 IU/L, 총빌리루빈 1.5 mg/dL, 총단백 5.8 g/dL, 알부민 3.3 g/dL, 아밀라아제 77 IU/L, 리파아제 157 IU/L, BUN/Cr 13.5/1.0 mg/dL, 당 104 mg/dL, 칼슘 8.5 mg/dL, LDH 520 IU/L, CRP 31.5 mg/dL, PT 12.6 sec (77%, INR 1.164)였다. HBs Ag, anti-HBs, anti-HCV 모두 음성이고 protein C 95%, protein S 125%, antithrombin III 87%로 정상이었다. 항인지질 항체, 항카디오리핀 항체, 루푸스 항응고 인자 음성이였고 D-dimer 3.7 g/L, 섬유소원 960 mg/dL으로 증가되어 있었다.
심전도는 동빈맥 소견을 보였고, 단순 흉부방사선사진은 정상이었으며 단순 복부방사선사진에서 마비성 장폐쇄 소견을 보였다. 복부 전산화단층촬영에서 췌장 꼬리 부분의 괴사와 함께 췌장 체부와 꼬리 주위로 액체저류가 관찰되었으며 간문맥 혈전이 비장정맥까지 확장되어 있었다(Fig. 1). 상부위장관 내시경에서 표재성 위염만 관찰되었고 식도나 위정맥류는 관찰되지 않았다.
췌장염에 대하여 금식 및 수액공급 등의 대증치료를 시작하였고, 환자는 출혈의 위험인자가 없어 간문맥과 비장정맥 혈전에 대해 내원 2일째부터 enoxaparin을 체중 1 kg당 1 mg의 용량으로 하루 2회씩 피하 주사하였다. 환자는 내원 4일째부터 증상 및 혈액검사 소견이 호전되는 양상을 보여 식사를 시작하였다. 내원 7일째 추적 검사를 위한 복부 전산화단층촬영을 시행하였고 간문맥 및 비장정맥 혈전이 좌간문맥까지 확산된 소견을 보이고 있었다(Fig. 2). 이후 enoxaparin 투여 7일째부터 경구용 와파린을 병합 투여하였으며 enoxaparin은 총 2주간 투여 후 중지하고 경구용 와파린 단독으로 변경하여 퇴원하였다. 외래 통해 와파린을 3개월 간 투약하였으며 치료 3개월째 시행한 복부 전산화단층촬영에서 췌장염은 호전되고 간문맥 및 비장정맥의 혈전은 소실되었다(Fig. 3).
고 찰
내장정맥 혈전증은 빈도는 낮지만 이환될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다[1-3]. 과거 영상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내장정맥 혈전의 진단이 어려워 개복술이나 사후 부검을 통해 진단되는 예도 많았다. 최근에는 전산화단층촬영 및 자기공명영상촬영 등의 영상학적 진단 방법들이 보편화되면서 조기 진단이 가능해져 내장정맥 혈전관련 사망률이 감소하였다[3]. 내장정맥 혈전증의 원인은 antithrombin III 결핍, protein C 및 S 결핍 등의 유전성 질환과 종양, 골수증식성질환, 경구피임제 복용 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신생아제대염, 충수돌기염, 게실염, 췌장염 등의 감염이나 염증성 질환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또한 비장절제, 간이식, 둔탁손상 등 간문맥 손상을 유발하는 경우에도 발생하며 특발성인 경우도 8~15%를 차지한다[4,13]. 본 증례의 경우 혈전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시행한 여러 검사 및 병력에서 급성 췌장염 외에는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였다. 따라서 환자의 간문맥 및 비장정맥 혈전증의 원인은 복강 내 염증 중 하나인 급성 췌장염으로 판단하였다.
급성 췌장염에서 정맥 혈전증을 일으키는 기전으로는 췌장 조직 부종으로 인한 외인성 압박, 염증 반응으로 인한 세포의 침윤, 혈관 내피의 손상, 그로 인한 혈류의 정체 등이 있다[1,2]. 해부학적으로 위장관의 정맥 배액의 융합이 췌장의 두부와 인접해 있으며 비장정맥은 췌장 후부와 근접해 있다. 비장정맥은 췌장후벽에서 미부로부터 경부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췌장경부에서 상장간막정맥과 융합하여 간문맥을 형성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급성 췌장염에 의한 정맥 혈전증은 주로 비장정맥과 간문맥에서 발생하며 때로는 상장간막정맥에서 발생할 수 있다[11].
급성 췌장염에 의한 정맥 혈전증의 국내 보고는 드물어 2000년에서 2013년까지 8예가 보고되었다(Table 1). 본 증례를 포함하여 9개의 국내 증례를 보면 간문맥이 6예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비장정맥 4예, 상장간막정맥이 3예를 차지하였다. 단독으로 혈전증이 발생한 경우는 간문맥 3예, 비장정맥 1예, 상장간막정맥 2예 그리고 두 개 이상의 혈관을 동시에 침범한 경우는 3예로 보고되었다. 또한 치료 방법에 있어서는 4예에서 항응고요법, 4예에서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였고, 1예에서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던 중에 공장경색 및 천공이 발생하여 수술을 선택하였다[7]. 항응고요법을 시행한 경우에 저분자량 헤파린만 투여하거나 저분자량 헤파린 투여 후 경구 와파린으로 변경 투여한 경우로 나뉘었으며, 사용 기간도 2주에서 14주까지 다양하였다. 항응고요법을 시행한 4예 모두에서 혈전이 용해되었고 보존적 치료를 시행한 4예 중 3예에서 혈전이 용해되었다. 국내에 보고된 급성 췌장염에 동반한 내장정맥 혈전증 증례에서 보면 항응고요법을 시행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항응고요법을 한 경우에 치료 시작의 시점, 치료 기간, 항응고제 종류 및 투약 방법 등을 다양하게 선택하였는데, 이는 현재 내장정맥 혈전증 환자에서 적절한 치료 원칙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췌장염이 간문맥 혈전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3~5% 정도로 보고된다[13]. 급성 간문맥 혈전증은 발열, 구역, 구토, 식욕부진, 체중감소, 설사, 복부팽만 등의 증상이 나타나나 전혀 증상이 없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급성 간문맥 혈전증의 경우 장간막정맥으로 파급되면서 급성 장허혈 상태로 진전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급격하게 장괴사와 복막염 및 패혈증으로 임상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4]. 만성 간문맥 혈전증은 간외 문맥 주변으로 부혈행 정맥, 해면종이 발달하고 문맥고혈압에 의한 복수, 위식도 정맥류, 비장비대 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간문맥 혈전증의 자연 경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치료도 보존적 치료에서 수술적 치료까지 다양하고 치료 결과도 혈전의 속도와 위치에 따라 다르다. 국소 혈전용해술, 방사선 중재 혹은 개복수술에 의한 기계적 혈전제거술, 문맥단락술 등의 침습적 방법 및 항응고요법 등 다양한 방법의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4]. 비장정맥 혈전증은 성인에서 췌장염 환자의 7~20%에서 동반될 수 있고 그 중 75%가 만성 췌장염에서 25%는 급성 췌장염에서 기인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14]. 비장정맥의 부분 또는 완전 폐쇄가 일어나면 비장혈류는 위기저부를 지나 위관상정맥으로 통하는 단위정맥(short gastric vein)과 위대망정맥(gastroepiploic vein)을 통해 간문맥이나 상장간막정맥으로 유출되는 역행성 혈류를 형성하며 이로 인해 위정맥류가 발생한다. 치료는 심한 위정맥류 출혈을 동반한 비장정맥 혈전증 환자에서는 비장절제술을 시행하고 정맥류 출혈이나 비장비대를 동반하지 않은 무증상의 비장정맥 혈전증에서는 보존적인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1]. 급성 췌장염에서 발생한 상장간막정맥 혈전증은 장허혈이나 소장경색을 유발할 수 있으나 비장정맥이나 간문맥 혈전증과 달리 흔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상장간막정맥 혈전증의 치료는 합병증 유무에 따라 결정되며 단독적인 항응고요법과 장절제술 및 혈전제거술 등의 수술적인 치료와의 병행치료로 나눌 수 있다[1,11]. 하지만 다른 원인없이 순수하게 급성 췌장염에 의해 이차적으로 발생한 상장간막정맥 혈전증의 경우에 원인 질환의 호전과 함께 혈전증이 자연적으로 용해된 사례들이 있어[6,9], 항응고치료 지침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까지 간문맥, 비장정맥 및 상장간막정맥을 포함한 내장정맥 혈전증에서 간경변과 문맥고혈압에 의한 출혈 위험성이 없는 경우엔 적극적으로 원인을 제거하고 항응고요법을 즉시 시행하는 것이 표준적인 치료로 제시되고 있다. 기간은 재발 위험도에 따라 최소 3개월 항응고치료를 지속하고 치료의 시작은 저분자량 헤파린 혹은 헤파린을 이용하고 이후 와파린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권장되나, 항응고제의 효과, 종류, 사용 기간, 장기 치료시 안정성 및 목표 INR 등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2-4]. 하지만 현재 내장정맥 혈전 환자의 임상상 및 항혈전치료의 경과를 살펴보는 다국적 연구가 진행 중으로 향후 치료 방침의 수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15]. 위식도 정맥류 등에 의해 출혈 위험성이 있는 경우엔 각각의 임상 상황에 따라 위험도와 치료효용성을 비교 분석하여 항응고제 투여나 방사선중재시술 등의 비 침습적인 처치에서부터 응급개복수술과 장절제 및 혈전제거수술까지 다양한 치료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3,4], 여러 상황을 고려한 확실한 치료 지침도 필요한 상태이다.
급성 췌장염 합병증으로 드물게 발생하는 내장정맥 혈전증은 이환될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질환으로 출혈 위험성이 없으면 최소 3개월 간의 항응고요법으로 치료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없어 추후 항응고제의 효과, 종류, 사용 기간 및 안정성 등의 치료 지침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저자들은 다른 이차적인 원인 없이 급성 췌장염의 합병증으로 발생한 간문맥 및 비장정맥 혈전증을 2주간의 저분자량 헤파린과 3개월 간의 경구 와파린 항응고요법으로 치료한 1예를 경험하고 이를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