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결핵실태조사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결핵 감염률 및 유병률을 파악했으며, 연간결핵감염위험률은 1965년도 5.3%에서 매년 약 7.5% 비율로 감소하여 1995년에는 0.5%까지 줄어들었으며, 전염성 폐결핵 유병률은 같은 기간 동안에 10만 명당 668명에서 93명으로 감소하였음을 보여 주었다[1]. 하지만, 질병관리본부 에이즈 결핵관리과에서 발간한 2010년도 결핵환자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최근에는 오히려 감소율이 둔화되고 있다[2]. 결핵의 이러한 반등에는 국내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e-deficiency virus, HIV) 감염자 및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AIDS) 환자의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추정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과 관련되어 발생되는 결핵의 경우에는 후기로 진행될수록 임상 양상이 비특이적이고 다양하며, 폐외 결핵의 빈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3]. 특히 복부 결핵은 비교적 흔한 폐외 결핵 중 하나로, 장결핵, 결핵 복막염, 결핵 장간막 림프절염 등을 포함하며, 위장관 전반에 걸쳐서 발생한다[4]. 하지만, 국내에서는 최근까지도 장결핵 환자에서 HIV 항체 양성율이 0%로 보고되어 왔었다[5]. 저자들은 결핵 장간막 림프절염, 복강내 한냉 농양 및 장결핵을 동반한 복부 결핵으로 내원하여 뒤늦게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으로 확진한 예를 경험하였기에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53세 여자 환자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적 수성 설사를 주소로 입원하였다. 최근 6개월간 8 kg의 체중 감소가 있었으며, 내원 2주일 전부터는 복통 및 발열 동반되어 개인 의원 방문하여 치료 받았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과거력상 고혈압, 당뇨, 결핵의 과거력은 없었고, 음주 및 흡연은 하지 않았으며, 그 외 특이한 약물 복용력이나 여행력은 없었다. 직업은 청소부였고, 결혼하여 슬하에 3명의 딸이 있었다. 내원 당시 활력 징후는 혈압 140/80 mmHg, 맥박 68회/분, 호흡수 20회/분, 체온 38.3°C였다. 만성 병색을 보였고, 결막은 창백하였으며, 두경부와 액와부에 촉지되는 종물이나 림프절 비대 소견은 없었다. 흉부청진에서 호흡음과 심음은 정상이었다. 복부 신체 검사상 경도의 미만성 압통이 있었으나 그 외 다른 특이 소견은 없었다. 혈액검사에서는 백혈구 6,300/mm3 (림프구 8.3%), 혈색소 8.4 mg/dL, 혈소판 275,000/mm3이었고, 간 기능 검사와 소변 검사는 정상이었다. Widal 반응은 음성이었고, 혈액 및 일반 대변 배양검사에서 의미있는 균의 성장은 없었다. 흉부 방사선 촬영에는 폐결핵 흔적이나 특이한 소견은 없었다.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말단 회장에 넓은 기저부와 불규칙한 경계를 동반한 타원형의 깊게 파고 들어가는 궤양이 관찰되었으며, 상행 결장에는 중심부에 누공이라 추정되는 작은 점막 결손부 이외에는 정상 점막으로 덮혀 있는 반원형의 융기성 병변이 관찰되었고 이는 외부 압박에 의한 소견이라 판단되었다(Fig. 1). 조직 생검상 건락성 괴사를 동반한 만성 육아종 염증을 보였으며, 항산균 염색에서는 항산균이 확인되었다(Fig. 2). Mycobacterium tuberculosis PCR 검사는 음성이었다.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상 말단 회장이 두꺼워지며 조영 증강되고, 주위 장간막에 다발성 림프절 종대와 더불어 한냉 농양이 관찰되고, 이는 상행 결장을 외부에서 압박하며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누공을 형성하고 있었다(Fig. 3). 환자는 이상의 소견상 결핵 장간막 림프절염, 복강내 한냉 농양 및 장결핵을 동반한 복부 결핵 진단하에, 항결핵제 복용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만성 설사, 복통, 발열 등의 임상 증상은 점차 호전되어 퇴원하여 외래에서 치료 지속하였다. 투약 2개월 경과한 후 시행한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말단 회장의 궤양은 치료되어 백색 반흔만 관찰되었으며, 상행 결장에서 누공은 폐쇄되었고 한성 농양으로 인한 융기성 병변은 소실되었다(Fig. 4).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상 말단 회장의 비대와 주위 장간막 림프절 종대 비대는 호전되는 양상이었다. 항결핵제를 총 6개월간 투여하였고, 이후 추적한 대장내시경과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에서는 결핵을 의심할 만한 병변은 관찰되지 않아 외래에서 정기 관찰하기로 하였다. 항결핵제 치료 종결 3개월 후에 환자는 1주 전부터 발생한 가래가 동반된 기침과 함께 운동성 호흡곤란으로 재차 입원하였다. 신체 검사에서 호흡수 22회/분, 체온 38.3°C이었으며, 흉부 청진상 호흡음은 정상이었다. 흉부 방사선 촬영상 폐렴을 의심할 만한 병변은 관찰되지 않아서, 비전형성 폐렴 추정하에 경험적 항생제 투여하였다. 하지만, 입원 당시 시행한 혈액 및 객담 배양검사에서 세균이나 곰팡이는 동정되지 않고, 마이코플라즈마에 대한 항체 검사는 음성이었고, 레지오넬라 및 폐렴구균에 대한 소변 항원 검사 또한 음성으로 판명되었다. 경험적 항생제 5일간 투여하였으나, 환자는 산소 공급 중에도 호흡곤란 증상이 심해졌고 동맥혈 가스 검사상 저산소혈증이 악화되고, 단순 흉부 촬영상 미만성 간질성 폐침윤 소견이 보였고, 급성 호흡부전 증후군으로 진행하였다. 입원 치료 도중에, 내연남의 과거력을 알게 되었고, 기저 면역력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HIV 항체 검사와, 주폐포자충(pneumocystis jirovecci)에 대한 객담 배양 검사 및 PCR을 시행하였다. 이후 HIV 항체 검사와 폐포자충 PCR은 양성으로 확인되었고, 혈장 HIV RNA는 2.84×103 copies/mL이고, CD4 T세포는 5/mm3이었다. 환자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주폐포자충 폐렴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 증후군으로 trimethoprim/sulfamethoxazole, 스테로이드 치료하고 호전되었으며, 항에이즈 약제 복용 위하여 전원하였다.
고 찰
복부 결핵은 결핵균이 위장관, 복막, 임파선 그리고 간, 비장, 부신과 같은 복강 내 고형 장기에 침범하여 발현되는 경우로 전체 결핵의 1–3% 그리고 폐외 결핵 중에서는 약 12%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6]. 이 중 위장관을 침범하는 경우는 66–75%로, 주로 말단 회장과 회맹판 부위에 침범하고 다음으로 공장, 대장을 흔하게 침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 복부 결핵은 주로 비특이적 증상으로 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37%의 환자들에게서는 복수, 33%에서는 종괴를 형성한다. 이외에도 장관 폐쇄, 흡수 장애, 천공, 누공, 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 환자에서와 같이 농양을 형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7-9]. 본 증례는 만성적 수양 설사 및 체중 감소 등을 주소로 내원하여 시행한 대장 내시경 검사 상 말단 회장부의 궤양이 확인되어 먼저 장결핵 가능성을 고려하였고, 이외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상 확인된 상행 결장의 누공과 연결된 농양, 장간막 림프절 종대 및 결핵에 합당한 조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복부 결핵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복부 결핵의 치료는 기본적으로 폐결핵의 치료와 같이 이소니아지드, 리팜핀, 에탐부톨, 피라지나마이드 4제를 병합하여 2개월 적용하고, 이후 피라지나마이드를 제외한 3제 요법으로 4개월 유지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9,10]. 항결핵제를 12개월 투약했을 때의 치료 효과를 비교한 무작위 연구가 있는데, 6개월 투약군과 비교해 보았을 때 두 군간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으며, 복부 결핵의 치료 방법으로 부신 피질 호르몬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는 상태로, 협착이나 섬유화와 같은 부작용을 감소 시키기 위해서 사용해 볼 수 있다[11].
항결핵제 치료 중 대장 내시경 추적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는, 장 결핵으로 확진 되지 못한 경우에 경험적 항결핵제 치료를 시행하며 치료 반응의 평가가 필요할 경우가 일반적이다. 본 환자에서는 복부 결핵으로 확진 되었으나 병변이 광범위하여 치료 반응에 대한 평가를 위하여 2개월간 항결핵제 투약 후 대장 내시경 추적 검사를 시행하여 이전에 관찰되었던 병변들이 소실 및 호전됨을 확인하였다. 이후에 환자는 총 6개월 투약 후 추적 검사 상 더 이상 결핵을 의심할 만한 병변 관찰되지 않아 항결핵제 투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환자는 복부 결핵에 대한 치료 종료한지 3개월 지난 시점에, 주폐포자충 폐렴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 증후군으로 진행하였고 뒤늦게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으로 진단되었다. HIV 감염은 전세계적으로 면역 억제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CD4 세포가 파괴되면서 면역력을 저하시키게 되는데, 위장관 점막 고유층의 CD4 세포가 파괴되면서 다양한 감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12]. 전세계적으로 결핵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으나, HIV의 전파와 연관되어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면역억제상태가 심해짐에 따라 폐외 결핵이 더 흔하게 발생한다[7,13].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폐외 결핵 환자의 60–90%가 HIV 동반감염 되어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7,14].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복부 결핵 환자 중에서의 HIV 동반 감염률은 0%로 보고되고 있다[5]. 하지만 점점 HIV 항체 양성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며, 면역 억제 상태가 심해짐에 따라 폐결핵 동반 유무와 무관하게 폐외 결핵이 더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어 [10] 폐외 결핵 중 하나인 복부 결핵의 빈도 또한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HIV 감염 환자에 대하여 결핵 동반 감염 가능성을, 결핵 환자에 대해서는 HIV 동반 감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겠다.
복부 결핵의 주된 침범 부위는 위장관으로 장결핵의 경우 대장내시경 혹은 대장 조영 등의 특수한 검사를 사용해야 진단이 가능하고 또한 이러한 검사들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단 및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장결핵 진단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대장 내시경 검사 및 조직검사(항산균 도말검사), 결핵 균주에 대한 조직 배양 검사, 흉부 X-선 촬영, 실험실 검사(일반혈액검사, 적혈구 침강 속도, C 반응성 단백 시험, 일반화학검사)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며, 이외 조직 결핵균 중합효소연쇄반응, 결핵 피부반응 검사, 인터페론-감마 측정, 고위관장법,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 그리고 HIV 항체 검사는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적인 검사 항목으로 제시되어 있다. 결핵과 동반 감염되어 있는 HIV 감염인의 경우 HIV의 혈중 농도가 더 높아지고 HIV 질환이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본 환자의 경우에서와 같이 주폐포자충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진행되는 등 불량한 예후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10] 장결핵과 같은 폐외 결핵이 의심될 경우, 면역 저하 상태에서 호발 할 수 있음을 주지하고 원인이 될 수 있는 질환으로서 HIV 감염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HIV 감염 여부 확인에 대한 검사 권유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진단 가이드 라인을 재정비하여 보다 정확한 진단 및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