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wha Medical Journal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Medicine
Editorial

Ewha Medical Care의 과거, 현재, 미래

정구영1, 신상진2
Koo-Young Jung1, Sang-Jin Shin2
Corresponding author Koo-Young Jung Department of Emergency Medicine, Ewha Womans University Mokdong Hospital,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1071 Anyangcheon-ro, Yangcheon-gu, Seoul 07985, Korea Tel: 82-2-2650-2876, Fax: 82-2-2650-5060 E-mail: kyjung@ewha.ac.kr

Copyright © 2017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Published Online: Jan 31, 2017

Abstract

Historically, Ewha University Medical Center roots from Boguyeogwan, which was founded by missionaries in 1887 as the first women’s hospital. Inheriting the spirit of missions, Ewha Medical Care (EMC) is an official missionary activity of Ewha Womans University that provide regular mission trips to offer medical services in underdeveloped countries. The first EMC trip was to Nepal in 1989 at the request of Nepalese Sakura Rajbhandary, a graduate of Ewha Womans University Medical School. Mission trips continued to Nepal from 1989 to 2001, and since 2003 mission fields were changed to Cambodia, Vietnam, and Uzbekistan. Since 2014, EMC has sent 3 mission teams to each countries, Cambodia, Vietnam, and Uzbekistan, every year. The final mission of EMC in the future is to establish a missionary hospital in the third world where medical service is in need as Boguyeogwan was established by missionaries to protect and save poor Korean women in the past.

Keywords: Ewha Medical Care; Medical missionary; Boguyeogwan

서 론

Ewha Medical Care (EMC)의 소개와 경과보고 등으로 관련내용을 보고한 적은 많으나 이렇게 글로써 정리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글로 표현하려다 보니 제목과 같은 거창한 내용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EMC의 과거,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의미 있는 기회라고 생각된다.

마곡의 새로 짓는 병원에 보구여관을 복원하려 준비하고 있고 이를 위해 9월 말에 복원 워크샵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은 “건물의 복원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의 복원이 더 중요하다”였다. 보구여관의 정신이 무엇인가? 바로 소외 받는 자—당시로서는 여성—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이 있다. 이화의 뿌리가 스크랜튼 선교사에 있듯이, 이화의료원의 뿌리도 보구여관에 있다면, 이화와 이화의료원이 빚진 자로서 세계의 소외된 자, 특히 핍박 받는 여성들에게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활동, 즉 선교적 활동을 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선교적 정신을 가장 의미 있게 유지하고 있는 활동이 EMC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역사는 후대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주요 가치로 생각하고 계승 발전할 때, 그 역사의 주체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주체의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그 역사를 이어가려는 동기가 생기게 된다. 본 소고에서는 1989년에 시작되어 27년을 활동해 온 EMC의 그 동안의 발전과정을 돌아보고, 현재의 상태를 평가하며, 앞으로의 나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론

1. EMC의 과거

EMC는 1989년 이화의대 졸업생인 네팔인 사꾸라 라즈반다리의 요청으로 처음 네팔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부터 2001년까지는 네팔에서, 2003년부터는 캄보디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의 3개국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이화여자대학교의 대표적 해외봉사활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9년 당시 의과대학장으로 계시던 해부학교실의 김순회 교수를 단장으로 정형외과 최기홍 교수, 정신과 이근후 교수, 전공의 2명, 의과대학생 6명이 25일에 걸친 최초의 장정을 다녀온 이래(Fig. 1), 1990년부터 1994년까지 5년간은 한국의 장미회가 세운 한-네팔 친선병원인 돌카병원을 집중적으로 방문하였다. 이화의대의 봉사단활동은 이 지역의 의료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으며, 최근에도 한국에서 이 지역으로 의료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러나, 1992년에는 본교 졸업생인 홍사옥 동문이 돌카병원으로 단기 파견진료를 위해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으며,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원이 인근지역에 조성되어 있다. 1995년부터 7년간은 네팔에서도 의료 환경이 보다 낙후된 오지인 덩쿠타, 바그룽, 포카라, 치트완, 까까니, 주파니 등 10여 군데에서 지역 의료봉사를 펼쳤다. 현지봉사와 더불어 몇몇 심장병 어린이를 초청, 수술하여 현지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으며, 네팔에 이화라는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키게 되었다.

봉사단을 주로 이끌어오던 이근후 교수께서 정년퇴임을 맞게 되면서(Fig. 2), 2001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는 봉사단의 활동을 공식적인 학교 차원의 해외봉사활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의과대학에 이 활동을 주관하는 의료선교봉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본교 학생처에서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봉사센터에서 학생들을 선발하고 봉사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2004년 봉사단 선발 시에는 5명으로 선발하는 비의과대학 학생 자리에 100명이 넘는 학생이 지원하고, 역시 5명을 선발하는 의과대학에서도 18명이 지원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의료원에서도 교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1년에는 네팔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선교사와 연결되었고, 2003년에는 본교 교회에서 파송한 간호대 동문 이철희 선교사의 협조를 통해 캄보디아로(Fig. 3), 그리고 2004년과 2005년에는 베트남 하노이의 현지 의료선교사인 김시찬 선교사와의 교류를 통해 베트남에서 활동을 하였다(Fig. 4). 이후 2006년에는 우즈베키스탄과 교류를 시작하게 되면서 현지 의과대학과 학교간 교류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EMC가 시작되었다(Fig. 5). 그리고 2007년도에는 2개 국가를 겨울과 여름을 나누어 2팀으로 가게 되었으며, 2014년부터는 매년 3팀이 3개 국가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겨울에 2개 국가를 동시에 나가고 있다(Table 1).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이 전혀 의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로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 네팔에서 동남아로 바뀌게 된 것도, 전혀 다른 나라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네팔의 내전으로 인하여 2002년 한 해를 건너 뛰었고, 그 다음 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다른 국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말미암아 네팔을 떠날 수 있었고 그때를 계기로 온전히 선교를 목적으로 의료봉사를 하게 되었다.

봉사지를 바꿀 때마다 적절하게 현지 선교사들을 연결시켜 주셔서, 여러 모습의 의료선교사들을 경험하며 의료봉사와 선교활동을 연계시켜나가는 지혜를 주시고, 의과대학을 거점으로 하는 의료봉사활동으로의 발전도 모색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또한 지금의 의료원의 국제화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1년 네팔을 시작으로, 6년간 1년에 겨울방학을 이용해 한차례 하던 활동이, 2007년부터는 현지의 필요에 의해 2팀을 꾸리려 하였으나 의료원의 도움으로 겨울 여름 두 차례로 나뉘어 가게 되었으며, 이 또한 당시 조류독감이라는 국외이슈의 큰 방해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는 기회가 되었다. 2014년부터는 학생들의 해외봉사 기회를 늘리기 위한 본교의 요청으로 자연스럽게 연간 3회로 증가하여 2017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번 다녀올 때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때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었다. 지금 기억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2009년도 우즈베키스탄이었던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2006년, 2007년 지방의대와 직접 교류를 시작으로 강의와 지역사회 진료로 여러 가지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해당 학교의 총장도 우리와의 교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총장이 갑자기 교체되고 나서 다음 해의 봉사는 새로운 총장의 비협조로 무산되었고, 이후 개인적 방문을 통해 교류를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여전한 비협조로 출발 3일 전까지 비자 발급을 위한 텔렉스가 대사관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또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여행사의 도움과 대사관의 이해로 우즈베키스탄 측의 행정적 착오가 생긴 것으로 하여 대사관 직권으로 출발 전날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현지에 도착한 후 해당 학교 관계자는 정말 황당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자기네들이 초청장을 발급해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왔냐는 것이었다. 정말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라는 든든하고 막강한 후원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학교간 국제교류를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전 해에 규정이 바뀌었다고 하고, 학교의 신임 총장은 우리와의 교류에 그다지 큰 노력을 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니 밑에서는 행정처리를 진행을 했는데, 마지막에 보건부의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었다. 그 나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우리가 한 것이었다. 봉사 후에 보건부 책임자를 만나 의사소통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하였으나 이후에 결국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고, 당분간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활동은 멈추게 되었다.

모든 해외의료봉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약품과 의료기구의 통관문제이다. 우즈베키스탄은 특별히 더욱 심하여 둘째 해부터는 가져가는 약품을 줄이고 현지 구매를 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통관이 되지 않아 가져간 의약품이 3일 동안 묶인 적이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봉사지역이 지방인 관계로 국내선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통관이 되지 않은 상태로 봉사를 할 수 없으니 통관을 종용했으나, 모든 의약품을 통관이 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우리와 함께 해당 의과대학까지 옮겨서 창고에 봉인된 상태로 보관을 하고 세관원이 나와 이틀 동안 모든 약품을 일일이 유효기간까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쓸 수 있었다. 마침 다른 예방활동을 준비하여 약이 없는 동안에 적절하게 활동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온갖 경험을 한 우즈베키스탄에 또 다시 2014년부터 가게 되었다. 한 곳을 추가하기로 결정을 하고 대상지를 정하는데 EMC의 뿌리인 네팔, 간호대 김수지 명예교수가 사역하시는 아프리카,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을 놓고 기도하는데 이곳으로 다시 인도해 주셨다. 그리고 그 관계가 바탕이 되어 정구영 교수가 우즈베키스탄에 장기 체류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향후 우즈베키스탄과의 교류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당시 EMC의 구호는 성경구절인 잠언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이었는데, 준비과정이나 봉사 후에는 이 말씀이 매번 다시 새겨졌다.

2. EMC의 현재

EMC가 이화여자대학교의 공식 행사가 되고, 선교활동으로 자리 잡게 된지도 이제 15년이 지났다. 지난 여름의 우즈베키스탄 봉사팀이 40차라고 하였다. 많은 경험이 쌓이고, 한 국가에 길게는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가면서 많이 체계가 잡히고 일정한 틀을 가지고 매 학기 초부터 준비해서 방학기간 동안 일주일 간의 봉사를 가고 있다.

그러나 매번 준비과정이나 현지에서의 활동이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의료진 선발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이것이 결정이 되어야 현지와의 협의를 구체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외과계 교수가 가게 되면 수술가능 여부와 해당 환자에 대한 준비 등 수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서 가야 그 교수님도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현지에도 도움이 되는 봉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의료진이 결정이 되어야 하나, 개인 사정 상, 수개월 후 방학 때의 일정을 미리 정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개인 휴가를 쓰고 비용을 개인 부담을 하기 때문에 충분히 헌신적인 분들의 지원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서 갈 수 있는 분들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초기에는 몇몇 관심 있는 분들의 헌신으로 이어갈 수 있었지만, 점차 횟수가 늘어나면서 여러 교수님들의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다(Table 1). 그러나 병원 진료에 지장이 가지 않는 범위에서 가야 하므로 그 숫자를 무작정 확대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음으로 어려운 점은 복잡한 봉사 준비과정을 맡아 진행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준비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지와의 의사소통이다. 현지 선교사와 같이 확실한 상대가 현지에 있는 경우는 그래도 비교적 의사소통이 쉽지만 현지 학교나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가 상대일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과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현지 봉사활동 동안의 교통, 숙식, 진료자체에 대한 준비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두 번째는 내부와의 의사소통과 준비이다. 우선 학생 선발을 위한 본교 학생처 사회봉사센타와의 협조와 의료진과 지원인력의 확보, 그리고 물품지원을 위한 의료원 각 부처와의 협조도 일상적 병원일과 같지 않다. 준비과정의 세 번째는 외부지원을 위한 의사소통이다. 가장 중요한 약품 기증은 거의 전적으로 준비를 맡은 교수들의 몫이다. 각 제약사와 접촉, 공문발송, 재촉하기, 리스트 만들어 현지 담당자에게 송부하기 등등. 그리고 우리 봉사활동을 지원하는 외부조직, 즉 동창회, 선교부 등에 공문을 보내고 발대식에 초청하는 등 신경을 써야 한다. 현재는 학기초에 의과대학의 EMC 위원회에서 봉사 장소와 일정을 확정한 후, 각 팀 별로 주로 담당하는 교수가 이 모든 준비를 도맡아 진행을 하고 있다. 출발 두 달쯤 전에 단원을 어느 정도 확정하게 되고, 이후 한 달여 준비모임을 통해 단원들간 팀워크를 다지고 활동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를 한다. 지금까지 초창기에는 한 두 사람의 헌신되고 관심 있는 교수들이 준비 초기 단계부터, 이 모든 과정을 챙기고 준비해 왔다. 그러나 봉사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 모든 과정을 몇몇 교수들에게 맡겨둘 수는 없게 되었다. 교수 개인의 한계도 있지만, 이러한 제한이 EMC 활동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의료원에서 이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학생 참가자는 매 봉사 당, 본교 5명, 의전원 5명으로, 본교생은 학생처 사회봉사센타에서 선발하며, 의전원생은 의전원에서 지원을 받아 EMC 위원회에서 선발한다. 학생들은 전체 비용의 반을 봉사장학금으로 지원을 받고 있으며 본교는 지원자가 많아 매우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친다고 하나, 의전원은 대개 정원을 많이 넘기지는 않고 있다. EMC가 학교의 대표적 해외봉사활동으로 그 인지도도 높고 학생들의 기대감도 높다. 그러나 학교의 선발 원칙에 따라 비기독교인도 다수 참여하게 되면서 선교활동의 본연의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의료진의 경우도 관심과 헌신을 바탕으로 참가자가 결정이 되므로 신앙적으로 편차가 클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출발 전에 1박 2일을 포함한 수 차례의 준비모임을 통해 선교활동으로서의 EMC임을 강조하고 선교 훈련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며, 현장에 가서는 매일 아침 성경묵상을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선교활동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참가자 중 일부는 새롭게 믿음이 생기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회복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어, 본 활동의 목적 중 일부인 조직 내부의 복음화에도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교활동으로서의 EMC가 십여 년간 이어져 오고 연간 활동 횟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여기에 참여한 인원이 지금까지 연인원이 1,000명 정도는 될 것이다. 이 중 학생이 반, 교직원이 반을 차지하며 교수 참여 인원도 연인원 100명, 실제 참여했던 교수의 수는 50명에 이를 것이다(Table 1). 이렇게 EMC 참여 인원이 많아지면서 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2012년에 이화의료선교회를 만들 수 있었다. 다들 이제 만들어졌냐고 할 정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었던 데는 EMC가 그 영적 바탕을 일구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것이 마곡의 새 병원에 보구여관의 복원과 의료원 조직 내에 의료선교센터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몇몇 교수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화의료원이 그 뿌리를 인식하고 선교적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교직원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교수들의 경우는 주로 자발적 참여로 그 외연을 넓혀왔으나, 의료원 직원의 경우는 필수인원, 즉 간호사와 약사 외에는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다. 지금까지 40차례의 활동 중에 사무직 직원이 참여한 경우는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원의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활발한 참여를 할 때 비로서 EMC가 의료원의 선교적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EMC의 미래

앞에서 이미 기술한 여러 가지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때, EMC의 발전적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EMC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몇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1) 선교적 정체성의 유지 확산이 활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화대학과 이화의료원은 기독교 기관으로서의 출발점을 가지고 있으나, 기독교적 정체성이 많이 퇴색된 상태이다. 의료원은 이익창출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끝없는 규모경쟁으로 다른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는 상황이다. 미션과 비전에 담겨있는 내용이 최상, 선도, 고도화, 선진화 등의 용어만 포함되어 있는 현실이다. 리더십의 관심도에 따라 정책이 좌우되기 때문에 그 연속성이 떨어지며, 장기적 비전과 관련해서는 더욱 더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한번 그 방향이 제대로 잡힌다면, 기독교적 정체성이 그 조직의 주요가치로 인정되어 누가 리더십에 앉더라도 그 방향성이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이화의료원의 기독교적 정체성의 확립과 조직 내에서의 그 가치의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EMC는 이의 핵심적 활동이 되어야 한다.

2) 참여자의 자발성과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대형 교육기관으로서의 병원은 풍부한 인력을 가지고 있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인력을 조달 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며, 다녀온 사람들의 좋은 평가가 있어야 한다. 특히 의료진 뿐 아니라, 간호직과 일반직이 동참하여 팀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배려해야 하다. 그러나, 현실은 의료진이 봉사를 목적으로 휴가를 받기가 어렵고, 조직과 동료의 협조 없이는 단기선교에 참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교직원의 참여는 개인휴가를 사용하고 비용도 자부담을 원칙으로 하여, 의료원과 동료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하며, 봉사와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교육기관이므로 학생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마련이 충분히 준비되어야 한다. 비기독교인의 동참이 불가피하므로 이들에 대한 안내와 사전 훈련이 충분히 되어, 현지에서의 활동과 주의점에 대한 교육 등, 출발 전의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느 기관이나 선교활동을 위한 별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후원금과 개인의 회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 단기선교의 비용 효과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있다. EMC는 단기선교로서의 역할은 학교와 병원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따라서 향후에도 재정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학교와 병원의 지원을 기본으로 참가자의 개인비용 부담을 원칙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영역이 넓어져 상시적 선교활동이 필요하거나 큰 비용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서는 별도의 선교비 모금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이화의료선교회가 발족하게 된 이유이다. 후원조직이 활성화되어 재정적 한계를 뛰어 넘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중장기적 비전을 갖는 선교활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료원이 중심이 되는 선교활동이 그 조직원의 선교적 관심을 유지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3) 보구여관을 이을 수 있는 이화의료원의 선교지가 있어야 한다.

교육기관의 단발성 단기 선교는 현지 카운터파트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어렵게 만든다. 카운터파트가 현지 NGO든, 교육기관이든 책임자와 담당자가 교체되면 그 동안에 쌓아온 관계를 새로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도 의료원 자체의 선교활동이 필요하다.

이화의료원이 선교적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선교활동의 장이 필요하다. 이는 제3세계에 이화라는 이름을 갖는 의료기관이 선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그 의료기관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화의료원의 뿌리인 보구여관이 조선의 여성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세워졌듯이 그런 필요가 있는 곳에 그 목적으로 이화의 이름을 갖는 병원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는 상징적으로 선교의 열매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이 선교활동의 장을 통해 이화의료원이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자기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료원의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를 선교사로서 인식하고 의료원이 선교적 기관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의료기관과는 구별되는 의료원으로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결 론

EMC가 이렇게 발전이 되고 의료원이 선교기관으로서 자리매김을 할 때, 130년 전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던 여성 의료선교사들에 대한 우리의 빚을 갚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의료원을 향한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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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First trip of Ewha Medical Camp in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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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Cover page of photo book of Nepal-Ewha Medical Camp in commemoration of the retirement of professor Kun H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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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Professor Koo-Young Jung (center), missionary Kyung-Il Kim and his wife praying in the church of Kampong Cham, Cambodia,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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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Medical service in the church of Hanoi, Vietnam (box, missionary Si Chan Ki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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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Lecture (A) and medical service (B, C, D) in the medical school of Urgench, Uzbekistan i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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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History of medical mission trip of Ewha Medical Care since 2001
Date Country/region Participants Special issues
2001. 2. 3–2. 11 Nepal/Kakani Total 23 members including Pf. Kun Hoo Lee, Pf. Koo-Young Jung, and 10 students Visiting Christian orphanage
2003. 2. 7–2. 14 Cambodia/Kampong Cham, Lompong Total 20 members including Pf. Koo-Young Jung, Pf. Hye-Young Choi, and 11 students Missionaries Chul Hee Lee and Shin Ja Lim
2004. 2. 21–2. 28 Vietnam/Hanoi, Soc son, Tan Chi Total 15 members including Pf. Chumyong Seong, Pf. Koo-Young Jung, Pf. Jae Jin Han, 2 doctors, and 6 students Hanoi Red Cross Society, Missionary Si Chan Kim
2005. 1. 22–1. 29 Vietnam/Hanoi, Soc son, Dong Anh Total 22 members including Pf. Koo-Young Pf. Jung, Youn-Sic Chun, Pf. Woo-Sik Chung, 3 doctors, and 11 students Hanoi Red Cross Society, Missionary Si Chan Kim
2006. 2. 3–2. 14 Uzbekistan/Urgench Total 22 members including Pf. Chumyong Seong, Pf. Koo-Young Jung, Pf. Hyung-Lae Kim, Pf. Han Su Kim, 3 doctors, and 10 students Exchange with Urgench medical school
2007. 2. 2–2. 10 Vietnam/Hanoi, Soc son and others Total 18 members including Pf. Youn-Sic Chun, Pf. Jae Jin Han, Pf. Sang-Jin Shin, and 10 students Vietnam Red Cross Society, Missionary Si Chan Kim
2007. 6. 22–6. 30 Uzbekistan/Urgench Total 17 members including Koo-Young Jung, Pf. Yeung-Chul Mun, 3 doctors, and 10 students Exchange with Urgench medical school
2008. 1. 26–2. 2 Vietnam/Hanoi, Phu Binh, Pho Yen Total 20 members including Pf. Sang-Jin Shin, Pf. Jae Jin Han, Pf. Hae Young Choi, Pf Han Su Kim, and 10 students Exchange with Hanoi medical school
2009. 1. 10–1. 17 Vietnam/Tan Lac, Cao Phong Total 20 members including Pf. Youn-Sic Chun, Pf. Soon Nam Lee, Pf. Hye-Young Choi, Pf. Sang-Jin Shin, Pf. Seung-Sin Lee, a doctor, and 10 students Providing medical service to minority group, Cooperating with Hanoi Red Cross Sunny Korea Clinic
2009. 7. 10–7. 17 Uzbekistan/Urgench Total 16 members including Pf Koo-Young Jung, Pf. Jae Jin Han, Pf. Yeung-Chul Mun, and 10 students Health checkup for local residents, Missionary Chul Hyun Cho
2010. 1. 16–1. 23 Vietnam/Lang Son, Dinh Lap Total 24 members including Pf. Sang-Jin Shin, Pf. Han Su Kim, Pf. Wook Bum Pyun, Pf. Do Sang Cho, Pf. Ji Soo Lee, Pf. Sun Jong Kim, a doctor and 10 students Participation of non-medical staff
2010. 7. 20–7. 27 Cambodia/Phnum Penh, Kampong Speu Total 20 members including Pf. Koo-Young Jung, Pf. Jae Jin Han, Pf. Yeung-Chul Mun, Pf. Rack Kyung Chung, Pf. Hye-Won Chung, and 10 students VESA (Volunteer for Educational Services in Asia), Missionaries Gil Hyun Kim and Chul Hee Lee
2011. 1. 15–1. 22 Vietnam/Thai Binh Total 28 members including Pf. Youn-Sic Chun, Pf. Young Ju Kim, Pf. Hae Soon Kim, Pf. Han Su Kim, Pf. Kwan Chang Kim, 2 doctors, and 15 students
2011. 7. 19–7.27 Cambodia/Phnum Penh, Kampong Speu Total 20 members including Pf. Koo-Young Jung, Pf. Hoo Jae Hann, Pf. Yeung-Chul Mun, and 11 students Ewha Srang Primary School
2012. 1. 7–1. 14 Vietnam/Tieu Hoa, Tan Hoa Total 23 members including Pf. Young Ju Kim, Pf. Yeon-Ah Sung, Pf. Sang-Jin Shin, Pf. Han Su Kim, and 13 studetns Cooperating with Hanoi Red Cross Sunny Korea Clinic
2012. 7. 17–7. 23 Cambodia/Phnum Penh, Kampong Speu Total 27 members including Pf. Woo-Sik Chung, Pf. Yeung-Chul Mun, Pf. Soon Sup Chung, Pf. Seung-Sin Lee, Pf. Jae Kwang Kim, Pf. Jung-Won Huh, and 10 students Ewha Srang Primary School, The Hebron Medical Center
2013. 1. 12–1. 19 Vietnam/My Son, Chuong My Total 27 members including Pf. Youn-Sic Chun, Pf. Kyung Ha Ryu, Pf. Young Ju Kim, Pf. Han Su Kim, Pf. Yun Taek Kim, a doctor and 14 students
2013. 7. 23–7. 30 Cambodia/Phnum Penh, Kampong Speu Total 23 members including Pf. Sang-Jin Shin, Pf. Yeung-Chul Mun, Pf. Soon Sup Chung, Sung Hwan Kook, and 10 members The Hebron Medical Center
2014. 1. 19–1. 27 Uzbekistan/Tashkent Total 19 members including Pf. Sejung Sohn, Pf. Koo-Young Chung, Pf. Woo-Sik Chung, and 10 students Exchange with Tashkent Pediatric Medical Institute
2014. 2. 12–2. 15 Vietnam/Thai Nguyen Total 19 members including Pf Yoon-Sik Chung, Pf. Yun Taek Kim, a doctor, and 14 students Postponed due to the change of mission field
2014. 7. 12–7. 20 Cambodia/Phnum Penh, Kampong Speu Total 28 members including Pf. Sang-Jin Shin, Pf. Soon Sup Chung, Pf. Dong-Hyeon Lee, Pf. Yeung-Chul Mun, Pf. Jang Won Park, 2 doctors, and 11 students
2015. 1. 18–1. 26 Uzbekistan/Tashkent Total 24 members including Pf. Chumyong Seong, Pf. Koo-Young Jung, Pf. Eun-Hee Ha, Pf. Han Su Kim, a doctor, and 10 students Visiting Korean nursing home (Arirang Nursing Home)
2015. 1. 24–1. 31 Vietnam/Thai Nguyen Total 21 members including Pf. Youn-Sik Chun, Pf. Yun Taek Kim, Pf. So Yun Shin, 1 doctor, and 13 students
2015. 8. 2–8. 10 Uzbekistan/Andijan Total 26 members including Pf. Sang-Jin Shin, Pf. Koo-Young Jung, Pf. Junbeom Park, Pf. Min-Hye Kim, 2 doctors, and 1 student Local NGO, Exchange with Andijan Medical School
2016. 1. 12–1. 19 Cambodia/Kampong Speu Total 32 members including Pf. Young Ju Kim, Pf. Sun Jong Kim, Pf. Yeung-Chul Mun, Pf. Ju Hee Kim (College of Pharmacy), and 24 students Participation of a professor and 11 students from the College of Pharmacy
2016. 1. 17–1. 22 Vietnam/Thai Nguyen Total 22 members including Pf. Youn-Sik Chun, Pf. Jeonghyun Yoo, Pf. Yun Taek Kim, Pf. Jang Won Park, Pf. Hee Sung Lee, and 11 students
2016. 8. 2–8. 9 Uzbekistan/Andijan Total 26 members including Pf. Chumyong Seong, Pf. Mihye Park, Pf. Han Su Park, Pf. Jong Gyun Ahn, Pf. Seung Yeol Lee, and 14 students Exchange with Andijan Medical School

Pf.,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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