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중환자의학(critical care)은 미국에서도 그 논의가 이루어지고 활발해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 비교적 새로운 의학 분야이지만, 지난 50여 년 간 의학 및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발전해 왔다[1,2]. 중환자의학은 생명 현상을 위협 받고 있는 환자에게 최신 의료 지견과 첨단 의료 장비를 적용하여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치료를 통하여 소생의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중환자 치료는 하나의 특정 과의 독자적인 분야가 아니다. 응급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이탈, 급성호흡곤란증후군 치료, 패혈증 치료, 영양 상태 평가 등 중환자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치료 행위에 대해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의료인들이 다학제간(multidisciplinary) 팀을 이루어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3,4]. 중환자의학 전문의는 그 수련 과정에 있어서, 세부 전공의 장벽 없이 중환자 치료에 관련된 지식을 전반적으로 습득하게 되어, 타과 협진 등으로 인한 치료의 단절 없이 치료의 조율이 가능하다[1,5]. 뿐만 아니라 기관 내의 중환자관리팀에 의한 다학제간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여, 그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현대 의학에서는 중환자실에 상주하며 치료를 담당하는 중환자실 전담전문의(intensivist) 제도가 권장되고 있고, 실제 여러 연구를 통하여 중환자의학을 수련 받은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에 의해 관리되는 중환자실의 경우, 환자의 생존율 등이 향상된다는 결과들이 제시된 바 있다[6-8].
본 글에서는 외과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중환자전문의의 역할과 외상 환자 또는 수술 후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입실하는 외과계 중환자실의 전담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 론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에 관한 규정”에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를 “대한민국의 법정 전문 과목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인정하는 수련 병원의 수련 프로그램을 통하여 중환자의학에 대한 소정의 수련을 완료하고 세부전문의를 취득한 자로 중환자의학 진료 영역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타 분야 전문의 및 보조 인력과의 협동 진료 체계의 일원으로서 환자에 대한 자문 및 2, 3차 진료를 수행하는 임상 의사”라고 정의하고 있다[9].
한국의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제도는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주도하여 유관 학회의 동의를 얻어 2008년 대한의학회의 승인을 받아 시행되었고, 2009년 한국의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가 처음 배출되었다. 내과, 결핵과, 마취통증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 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법정 전문 과목 전문의가 대한중환자의학회에 전임의 수련 신청을 하고, 세부전문의 지도의가 있는 수련병원에서 6개월 이상의 중환자실 몰입 기간을 포함한 1–2년의 수련 기간을 거쳐야만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자격인정시험의 응시자격을 얻게 된다. 이후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자격인정시험을 통과해야만 대한중환자의학회에서 인준하는 세부전문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중환자실은 병원 내에 특별히 고안된 일정한 공간에서 환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하여 환자의 예후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인식에서 시작된 현대의 중환자실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중환자에게 지속적인 집중 치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1) 지정된 공간에서, (2) 특수화된 감시 및 치료가 가능하여야 하고, (3) 지속적인 치료가 제공될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하며, (4) 적절한 간호사-환자 비율이 유지되고, (5) 전문화된 의료전문가들이 상주해야 한다[10].
Leapfrog Group [11]과 Milstein 등[12]은 중환자실의 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위하여 24시간 7일 내내 다른 단위의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낮 시간 동안 중환자실에 상주시켜야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5분 이내에 전화 연락이 가능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5분 이내에 중환자실로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group에 의해 건의된 24/7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모델은 기본 전공 과목(base specialty)과 관계 없이 제대로 수련 받고 검증된 중환자전문의에 의한 양질의 진료를 중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1,11,13].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전체 중환자의 약 3분의 1 정도만이 중환자의학 전문의에 의해 제공되는 치료를 받고 있으며[4], 2020년에는 중환자의학 전문의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1,14].
한국의 경우,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제도가 2013년에야 일부 대학병원에 자체적으로 도입되어 시작되었다. 2015년 1월부터는 정부의 정책적 차원의 지원으로 3차 병원의 중환자실에는 반드시 한 명의 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상주하도록 하였으며, 이후 개선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항목에 ‘적정 전담전문의 수’가 포함되어 중환자실 입실 환자 20명 당 1명의 전담전문의가 상주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이를 적정성 평가 지표로 삼고 있다[15].
중환자 관리가 외과의 핵심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외과의들은 수련이나 참여의 기회가 줄어들고 오히려 비외과전공자인 전담전문의들(예: 마취과 의사, 내과 의사 등)이 외과계 중환자들의 치료와 관리에 더 많이, 더 깊게 관여하고 있다[1]. 중환자 관리를 담당할 외과 의사의 수는 예전에 비하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나, 실제 그 수요에는 한참 못 미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외과계 중환자의학 전문의 수련을 담당하는 3차 병원에서도 외과계 중환자실 전담 인력의 30%는 외과 의사가 아니라고 대답하였다[16].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일본집중치료의학회(Japanese Society of Intensive Care Medicine)에서 활동하는 회원의 약 25%만이 외과 의사라는 보고가 있다[2].
한국의 경우,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제도가 대한중환자의학회 및 유관 학회, 대한의학회의 승인을 받아 2009년 시작된 이래 2015년을 기준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1,378명의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가 배출되었으며 이 중 외과전문의의 수는 59명(4.3%)에 지나지 않는다[17]. 국내에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제도가 도입된 기간이 짧기 때문에, 현재까지 각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의 구성 비율이나 실제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로 재직 중인 외과 의사의 비율 등에 관한 자료는 부족하다.
중환자의학의 발달 초기부터 마취과를 비롯한 다른 전공의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들이 중환자실의 외과계 환자들을 관리하는데 관여하였다. 이에 Savel 등[18]은 외과의사가 아닌 의사들이 외과계 중환자 관리에 관한 전문적 식견을 쌓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수술 술기에 대한 잠재적인 합병증을 모든 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술 술기 및 과정에 대한 정보는 수술에 직접 참여한 외과 의사로부터 얻는 것이 가장 좋고, 따라서 그 외과 의사는 수술 후 중환자실 퇴실까지 환자 치료에 관여해야만 한다. 따라서 환자의 치료 과정, 교육 및 연구 등에 있어서 외과 의사와 비외과 의사는 학회 또는 단체 차원의 교류, 다학제간 협업 등이 필요하다[1]. 그러나 수술적 치료를 요하는 환자의 경우 환자는 수술실-중환자실-일반병동의 순서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 흐름에 있어서 담당 외과 의사는 수술 후 치료를 다른 의사에게 넘기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19]. 인류학자 Cassell [20,21]은 외과 의사와 외과계 중환자실(surgical intensive care unit, SICU)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외과 의사의 기질에 대해 과단성, 자제력, 자신감, 확신을 언급하면서, 외과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치유/완치를 위한 약속(covenant to cure)’으로 여기기 때문에 수술 후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실한 경우 치료의 주도권이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바 있다. 따라서 중환자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외과 의사들이 치료 권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심지어 중환자의학을 전공한 같은 외과 의사가 중환자실을 전담하고 있는 경우에도 외과계 중환자실의 전담전문의 제도 도입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13]. 따라서 이에 대한 의료 기관 및 학회 차원의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언급한 24/7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모델은 일부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특히 외과전문의에게는 부담 내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외상전문외과의의 경우, 중환자실 뿐만 아니라 응급실, 수술실, 일반병동의 환자들까지 책임져야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그들에게 주어진 외래 진료까지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상 및 중환자 관리가 노동 강도가 세고, 수술 건수가 적어 수련의 기회가 줄어들고, 야간 근무 또한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결과적으로 개인 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22,23]. 야간 근무나 노동 강도에 상응하지 못 하는 보상, 전염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의료 사고 및 분쟁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외상전문의나 중환자의학 전문의를 모집하는 것 자체가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1].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흔한 이유는 수술 기회의 부족으로 생각된다[1]. 외상 환자에서 수술적 치료를 요하는 환자들은 약 20%–25% 정도로, 외상 치료나 중환자 관리가 대부분 비수술적 치료로 이루어지면서 전공과의 괴리감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22-24]. 업무 과다, 업무량 및 스트레스에 비해 불충분한 보수뿐만 아니라 외상외과전문의나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는 ‘수술하지 않는 외과 의사’, ‘수술할 기회가 적은 외과 의사’로 인식되어 같은 외과의사들 사이에서도 마치 2류 외과 의사로 취급 받는 듯한 불안감 등과 같은 이유로 꺼리는 경우도 있다[1]. 실제 미국의 외과 레지던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상당 수의 레지던트들이 외과계 중환자 관리에 투자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대신 외과 수술, 외상 수술 등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난다면 중환자의학 전문의 수련이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응답하였다[23].
Acute care surgery란 응급 수술, 외상 및 중환자 치료를 아우르는 비교적 새로운, 그러나 보다 전문적인 개념의 외과 영역이지만, 현재까지 학회 차원에서 정립된 한글 용어조차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부득이하게 영문 그대로 acute care surgery로 표기하며 논의하고자 한다.
미국의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Surgery of Trauma에서는 외과 의사들의 외상 및 외과계 중환자 관리에 관심을 증가시키기 위해 외상(trauma), 외과계 중환자 관리(surgical critical care), 그리고 응급 외과 수술(emergency general surgery)을 통합한 acute care surgery라는 개념을 내놓고[25], acute care surgery의 전문의 양성을 위한 2년 과정의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2008년 첫 전문의를 배출하였다[26]. 이러한 형태의 수련 과정은 이미 여러 외상 그룹에서 흔하게 행하여지고 있는 것으로, 외상 환자의 수술적 치료 외에도 일반적인 외과의 정규 및 응급 수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외과의의 수술 기회를 증가시키고, 술기의 수준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27].
한국에서도 2008년 대한중환자외과연구회가 창설되고, 2013년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Korean Society of Acute Care Surgery)로 그 명칭을 바꾸어 대한외과학회의 산하 학회로 승인을 받았고, 2009년 외상외과세부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었다. 2013년 제65차 대한외과학회 학술대회의 외상•중환자외과 세션에서는 이 acute care surgery에 대한 논의가 된 바 있으며[28], 이후에도 외과 의사의 중환자의학 교육을 위한 학회 차원의 노력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Acute care surgery 영역에서는 외과 본연의 수술 외에 수술 후 관리 및 외상 환자 관리 등의 중환자 집중 치료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며, 외과계 중환자 집중 치료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세부전문영역 특성 상 수술에 노출되는 빈도 수가 적을 수 밖에 없으나, 외상 수술의 응급도 및 중요도에 맞추어 파견 등의 제도적 보충을 통하여 acute care surgeon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수련 과정은 중환자실, 수술실, 응급실, 일반 병동에 acute care surgeon이 각각 체재하여야 하는 시간 및 이에 따른 술기, 그리고 의사 개인의 학문적 성취를 위한 시간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충분한 인력이 조달되어 분담 업무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하여 의사 개개인의 시간 배분에도 관여하여 수술에 참여하는 시간과 중환자 관리에 전념하는 시간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17,29].
결 론
외과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중환자의학에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출혈성 쇼크, 패혈증성 쇼크, 급성 신손상,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등을 호소하며 중환자실 또는 응급실로 내원하는 중환자들은 집중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외과 의사들은 수액요법, 수혈, 중심정맥관 삽입, 폐동맥 도관 삽입술, 기관절개술, 흉관삽입술, 농양 배액술 등에 대한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으므로, 중환자의학 전문의 수련 과정을 이수한 외과 의사들은 외과계/비외과계 중환자 관리에 임상적 측면이나 행정적 측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2]. ‘수술을 하지 않는 외과 의사’라는 모순된 정체성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수술을 받은 환자 또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는 환자에 대한 이론적/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 어떤 전공자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외과계 중환자의학 의사’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도 중환자의학 및 acute care surgery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수련을 장려하여, 외과 의사들의 인식을 바꾸고 중환자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