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글쓰기 능력과 글쓰기 과정에서 획득되고 발휘되는 비판적 사고능력은 의사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이다. 이 역량은 의사가 환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전 과정에서 활용되어야 하며 환자와 그의 가족, 대중, 의료전문직 동료들과 의사소통하고 지속적으로 자기를 계발하는 과정에 끊임없이 요구된다[1-3]. 그러나 의학교육자들이 글쓰기와 비판적 사고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교육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의료인문학, 혹은 인문사회의학 교육 전반에서 제기되는 장애들[4] 이외에도 글쓰기 교육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고유한 도전들이 있는데, 이 도전들을 기회로 전환시키는 것이 의학교육에서 글쓰기 교육 혹은 글쓰기 교육에 통합된 비판적 사고능력 교육에 필요하다. 의예과 학생 대상 글쓰기 교육에서의 도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의예과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과목을 제공할 때의 도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수업’의 형태로 이를 제공할 때 발생하는 도전이다.
먼저 기본의학교육, 혹은 이에 대한 예비 단계에 진입한 의예과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의학교육 안의 여타 교과목들에서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세부적으로 두 가지 고유한 도전이 존재한다. 첫 번째 도전은 관심과 역량 측면 모두에서 나타나는 학습자 간의 편차이다. 이 논문에서 검토할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교과목이 제공되는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의 경우, 글쓰기 교과는 모든 학생들이 들어야 하는 기초 교양으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여러 교과목 중에 자신의 상황이나 관심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선택을 하여 해당 교과에 참석하게 된 상태가 아니다. 게다가 의예과 학생들의 경우, 글쓰기 수업이 여타의 전공 교과목처럼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학생들의 글쓰기 역량 또한 중등교육 동안의 문•이과 구분, 신문부, 문예부 등 글쓰기 관련 동아리 경험의 유무, 그 외 논술 및 토론 학습 경험 여부 등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이 난점을 극복하여 학생의 관심을 유도하고 기존 역량 수준과 무관하게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학습목표에 관한 인식이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 문헌들은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양으로서의 글쓰기를 몇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Yi [5]에 따르면 ‘사고와 표현’ 교과목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이루어진다. 교양국어•글쓰기, 비판적 사고와 효과적인 표현, 학술적 수준의 세미나가 바로 그 세 가지이다. Kim [6]은 대학에서의 학술적 글쓰기를 교육목표와 각 교육을 담당하는 학과들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논문지침은 해당 논문을 학문적 표준으로 삼는 각 과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내용이며, 문장표현은 국어국문학과가 주관이 되어 글쓰기를 교육할 때, 글쓰기 전략은 국어교육학과가 주관이 되어 교육할 때, 그리고 비판적 사고는 철학과가 주관이 될 때 중점을 두는 학습목표이다. 글쓰기 교과목은 위에서 열거한 다양한 방식과 정체성으로 구성될 수 있다. 모든 학습목표와 내용이 의학교육과 어느 정도의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직면한 도전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면서도 한정된 교육시간을 활용하여 의사의 핵심 역량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즉, 기본의학교육의 전체 목표와 긴밀하게 결합될 수 있는 역량들에 집중하여 이를 진흥할 수 있는 학습목표로 교과목을 구성하고 학습자에게 이를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비판적 사고와 종합적 의사소통,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자기주도학습 등은 의학교육에서 강조되는 역량이므로 문장표현보다 더 중점을 두어 교육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선택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글쓰기 교육에 동료 평가 및 되먹임을 도입하여, 학생들의 종합적 의사소통을 도모하고 평가와 되먹임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학습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글쓰기’ 교과에서의 두 번째 도전은 지속적 되먹임(첨삭)과 객관적 평가 제공의 필요성이다. 되먹임이 없는 글쓰기 과제는 되먹임이 있는 경우에 비해 학습의 촉진 효과가 떨어진다. 글쓰기 과제를 평가하고 이에 되먹임을 주는 경우, 각각의 과제는 형성평가로 작용할 수 있다. 교수자는 제출된 과제들을 통해 학생의 성장곡선을 가늠하고 필요한 보충학습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학생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다. 또한 되먹임과 첨삭은 학생으로 하여금 이 글에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만든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많은 교수자들은 되먹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학생들에게 세심한 되먹임을 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첨삭을 담당하는 글쓰기 센터의 도움이나 관련 과정 훈련을 받은 조교의 도움 없이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첨삭지도를 진행하는 것은 교수자에게 굉장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한 대응으로서, 교수자 되먹임에 덧붙여 학생 상호 되먹임을 활용한다면 학생들은 더 자세하고 풍부한 되먹임을 받고 독자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학습자 내의 동료 평가 및 동료 되먹임, 동료 학습(peer assisted learning)은 효과적인 교육 전략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7-11]. 동료 평가 및 되먹임을 하도록 요구하는 경우 학습자들의 성찰이 촉진되고 이에 따라 학습효과가 상승된다. 또한 구체적 교과목 수행에 틀에 잡힌 상호 되먹임 및 평가를 도입하는 경우, 교수자의 부담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면서도 충분한 정도의 되먹임을 적시에 제공하게 함으로써 형성평가의 장점을 취할 수 있다.
되먹임과 연관된 또 다른 난관은 평가이다. 글쓰기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흔한 오해는 글을 평가하는 작업이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학습의욕은 더욱 저하될 것이다. 특히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의 경우, 어떻게 써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모호한 경우 쉽게 포기한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평가 역시 필요한 수준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다. 지식에 대한 평가에 비해 주관적인 측면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글쓰기의 평가 또한 객관적 루브릭(rubric)을 활용하여 진행할 수 있다. 각 단계별 과제에서 목표로 삼아야 하는 주요한 학습성과가 무엇인지 수업 중에 전달하고, 이를 루브릭이나 평가질문으로 명시적으로 만들어 과제 공지과 함께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루브릭을 동료평가 및 상호 되먹임, 그리고 교수자에 의한 평가에 모두 활용한다면, 학생들은 루브릭에 따라 동료의 글을 평가함으로써 각 단계의 글쓰기에서 만족시켜야 하는 기준이 무엇이며 목표로 하는 성과가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다.
한편, 글쓰기가 교과목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활동인 경우, 정규 ‘수업’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다루어야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활동이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한 가장 주요한 학습 방법은 글을 직접 쓰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업은 대부분의 경우 수업 중(in class)이 아니라 수업의 전, 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수업’ 중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맞춤법이나 인용 등 글쓰기의 기본적인 사항들과 비판적 사고 진흥을 위한 기본적 틀을 교수자가 강의식 수업을 통해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학생이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수업에 통합시켜야 한다. 종종 정규 수업에서 강의나 시청각 자료를 통해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제공하고 이후에 과제로서 학생들이 이에 관한 성찰적 글쓰기를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동일한 주제나 동일 학문분야 안에서 글을 쓴다면 이러한 방식의 활용 또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학술적 에세이를 써 나가고 있다면, 글쓰기 소재 제공으로서의 수업 활용은 자칫 잘못하는 경우 제한된 주제로 학생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거나, 교수자가 제공하는 내용과 자신의 주제가 다행히 겹쳐서 수업 자료를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몇몇 학생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작성한 글에 대한 교수자와 동료의 되먹임, 평가를 나누거나 이에 관한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토론이나 추론 활동들을 정규수업 안에서 다룬다면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을 촉진하면서 글쓰기에 더욱 몰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사항들이 의예과 글쓰기 교과목의 개발과 실행에서 예상되는 도전들이다. 이 논문에서는 일개 의과대학 의예과에서 개발, 실행한 글쓰기 및 비판적 사고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위에서 분석한 도전들을 기회로 전환하는 데에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
방 법
본 논문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 의예과 1학년 1학기 교과목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교과목에서의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의 효과에 관한 반성적 고찰을 시도한다. 이를 위하여 첫째, 교과목의 실제 실행을 요약하고 교과목 수행에서의 결과를 위의 문헌 연구에서 지적된 잠재적 도전들에 대한 성공적 관리 여부로 평가하였다. 둘째, 동료 평가 및 상호 되먹임 교육 방법의 글쓰기 교육에의 적용을 학습자의 시각으로 평가하기 위하여 수업 중 학생들로부터 획득된 수업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질적 자료로서 분석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전체 학부생을 대상으로 제공되던 기초 교양 교과목, <우리말과 글쓰기>를 새로이 편성한 의예과 교과목에 맞도록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로 수정, 변경하여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우리말과 글쓰기> 교수자(국문과)와 의예과 담당교수(의료인문학, 저자)의 팀티칭을 구성하였다. 글쓰기 기초를 위한 맞춤법과 인용 및 요약과 논평문 작성까지의 전반부는 국문과 어문전공자가, 학술적 에세이 구상부터 완성까지의 후반부는 의예과 담당교수인 저자가 담당하였다. 교과목의 계획 단계와 실제 실천 과정에서 두 교수자 사이의 의견교환과 합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공통된 목표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이라는 특정 교육방법의 적용을 논하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상, 저자가 교육 방법의 적용과 그 효과를 직접 관찰한 한 쿼터 동안의 후반부 수업에 한정하여, 의예과 1학년 1학기 1개 분반(26명)에게 제공된 교과목 실행 과정 안에서의 동료 평가와 되먹임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결 과
위에서 지적한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본 교과목은 비판적 사고와 종합적 의사소통을 학습목표로 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교육방법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교과목의 전반적 구성과 교육 내용들은 Won 등[12]이 제안한 단계적 글쓰기 프로그램의 과정을 따랐다. 이들이 제안한 단계적 글쓰기 프로그램이란 요약, 논평, 에세이 3 단계로 읽기와 쓰기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이 방식은 긴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 의예과 학생들이 요약과 논평을 통한 비판적 독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학술적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하려는 학습목표에 부합하였다. 중간고사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학술적 에세이를 쓰기 위한 단계별 작업을 수행하였다. 단계별 작업은 현안 문제 선정, 개요 작성, 과학 추론과 도덕 추론 연습, 학술적 에세이 초고 발표, 학술에세이 완성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Fig. 1과 같다.
중간고사 이후의 첫 시간에 학생들은 학술적 에세이라고 칭하는 소논문의 형식을 강의를 통해 학습하고 이 형식으로 완성해보고 싶은 현안 문제를 각자 고민하여 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이때 현안 문제는 본인이 평소 관심이 있던 문제라면 어떤 것이나 괜찮으나 학술적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며, 한 쿼터라는 시간적 제한과 5–7쪽으로 한정되어 있는 학술적 에세이의 분량 안에서 적절하게 탐구될 수 있는 문제여야 함을 조건으로 명시하였다. 이후에는 선정한 각자의 현안 문제를 다루는 글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구성할 것인지 개요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현안 문제 선정과 개요 작성이 끝난 후에는 학술적 에세이 작성에 도움이 될 만한 추론 방식을 강의를 통해 학습하고 조별로 실습하였다. 과학 추론의 기본 구조를 Giere 등[13] 이 그들의 책, Understanding Scientific Reasoning에서 제시한 6단계에 따라 교수자가 소개하고, 학생들은 이를 토대로 조별 실습을 수행하였다. 실습은 위의 책에서 제시한 연습문제와 학술적 에세이에서 과학적 추론을 다루어야 하는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사례들(지구온난화, 진화심리학, 유전자 재조합 식품의 안정성)로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최종적으로 작성할 학술적 에세이에서 독자들의 수준을 고려하고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도덕 추론 또한 구조화된 조별 토론을 통해 연습하게 하였는데, 이 또한 학생들이 현재 학술적 에세이의 주제로 삼고 있는 소수자 우대정책,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화학적 거세, 셧다운제를 쟁점으로 삼았다. 토론 실습에서는 해당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학생들이 먼저 쟁점을 조원들에게 소개하는 발표를 하고 이후 진행되는 조별 토론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각각의 발표자들은 해당 주제에 대하여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토론의 방향을 잡으면서 쟁점에 관한 본인의 이해 상태를 되짚고, 일반적인 독자의 수준을 고려할 수 있었다. 과학 추론과 도덕 추론은 모두 조별 실습으로 수행하였다.
이후에는 총 3회 수업에 걸쳐 학생들은 6–7명으로 구성된 4개 조로 나뉘어 분리된 공간에서 초고 발표와 평가를 수행하였다. 각각의 조 안에서 조원들의 한 수업당 2–3명의 학술적 에세이 초고를 검토하여 3회의 수업이 끝났을 때 총 26명의 학생이 모두 초고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동료 평가를 받았다. 발표를 맡은 학생이 본인이 그동안 작성한 초고를 발표하면 그의 짝이 그 초고를 미리 읽고 작성했던 논평문을 발표하여 초고 평가에서 논의할 기본적 쟁점들을 명료화 하고, 이후 나머지 조원들이 초고를 평가하고 되먹임을 주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3회에 걸친 초고 발표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수업으로 한 교실에 모여 나눔을 하였다. 나눔 수업 이후 초고 발표에서 받은 동료 되먹임과 교수자의 되먹임을 참고하여 퇴고를 거쳐 최종 학술적 에세이를 교수자에게 제출하였다. 각 학생의 초고 발표일로부터 학술적 에세이 최종 제출까지의 시간은 10일이었다. 학생들은 주어진 10일의 기간 동안 퇴고를 하여 최종 기말레포트로서 학술적 에세이를 제출하였다.
지속적 되먹임과 형성평가를 도입하기 위해 본 교과목에서는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적용하였다.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학생들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저자와 독자가 구체적인 의견을 주고받고, 이를 통해 더 좋은 글에 이르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형식을 제공하여 학생들이 구체적인 되먹임을 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생들은 피평가자의 글을 놓고 글의 소재가 흥미롭다거나 글을 성실하게 썼다는 둥, 해당 피평가자가 앞으로 글을 수정을 해 나가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되먹임을 주고받는 데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화된 평가지를 제공하였다. 또한 평가 및 되먹임을 위한 평가지는 수업 중에 다루었던 학습성과이자 궁극적으로는 교수자가 평가할 때 쓸 평가 루브릭을 그대로 반영하여 제공하였다. 이는 동료평가와 상호 되먹임 과정에서 학생들이 타인의 글에 대한 평가자 역할을 직접 수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글이 구성되어야 하는지 되새길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강의에서 듣긴 하였지만 아직까지 체화되지 않은 기준들을 직접 적용해보고 타인의 글이나 개요를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하면 본인의 글 또한 동일한 기준들을 적용하여 정연하게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내용과 학습성과를 충실히 반영하여 평가지를 구성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평가지 또한 교육내용으로서 채택한 단계적 글쓰기[12]를 참조하여 구체화하였다.
학술적 에세이의 작성 과정에서 총 3번에 걸쳐 동료 평가 및 상호 되먹임을 활용하였다: ① 현안 문제 설정 단계, ② 개요 작성 단계, ③ 초고 작성 단계. 모든 단계의 되먹임에 26명의 수강생이 빠짐없이 노출되었으며, 또한 모든 학생이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주는 데에 참여하였다. 첫 번째 현안 문제 설정 단계에서는 각각의 저자들이 본인이 1달 동안 작성할 학술적 에세이의 주제를 선정하고자 이를 검토하였다. 학생들은 학술적 에세이라는 글의 형식 안에서 본인이 평소 관심이 있었던 주제들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로 다양한 현안 문제들을 설정하였다. 따져보아야 할 사항은 학생들 각각이 글 속에서 탐구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현안 문제들이 5–7쪽의 글 안에서 설명과 논증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각 학생들은 자신이 고른 현안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따라서 가능한 한 본인이 처음 생각한 대로 현안 문제를 고수하고 싶어 하는 감정적 상태에 있었으므로 객관적 시선에서 현안 문제의 적절성에 관한 되먹임을 받는 것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이 단계부터 동료평가 및 상호 되먹임을 활용하였다. 이 단계에서는 1명의 평가자가 자신의 짝에게 되먹임을 주는 1:1 방식을 활용하였는데, 적절한 현안 문제의 조건 두 가지, 즉, ‘저자가 논증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는가,’ ‘학술적 가치가 있는가’의 두 조건과 이에 대한 세부 조건들을 보여주고 자신의 짝의 현안 문제가 이 조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지 물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 중 짝끼리 자신의 현안 문제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되먹임을 줄 수 있도록 버즈 그룹(buzz group) 시간을 주었다. 교수자는 피평가자들에게 주어지는 되먹임이 정당한지, 그리고 짝이 준 되먹임을 피평가자들이 수용하는지를 관찰하였다. 그 이후에는 발표 자원자를 받아 서로 주고받은 되먹임의 내용을 전체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료 평가 및 상호 되먹임을 두 번째로 활용한 단계인 개요 작성 단계에서는 더 구체적인 평가와 되먹임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구조화된 평가지를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은 선정된 현안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개요를 수업 전에 이러닝 공간에 올렸고, 수업 중에는 짝을 이루어 각각 상대의 개요들을 평가지에 따라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평가지에는 전 시간 강의에서 다루었던 개요의 조건들을 상세하게 제시하여 상대가 쓴 개요 평가에 직접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교수자 또한 동일한 조건들을 사용하여 최종 개요 제출물을 평가할 것임을 공지하였다. 수업 중 평가지 안의 질문에 따라 상대의 개요를 평가했던 내용을 추후 정리하여 이러닝 공간에 다시 올리는 것을 요구하였으므로, 학생들은 주어진 상호작용 시간에 집중하였다. 동료 평가를 맡은 각각의 학생들은 평가지 내의 각 질문을 상대의 개요에 꼼꼼하게 적용해 보고 또 개요에서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저자에게 직접 물어 저자가 이를 보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에게 짝이 지워진 동료로부터 수업 중 구두로 되먹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동료가 다음 수업 이전까지 정리하여 이러닝 공간에 올려놓은 최종 되먹임 자료, 그리고 동료 평가자의 되먹임 및 피평가자의 개요를 검토한 교수자의 의견을 모두 참조할 수 있었다.
마지막 동료평가 및 상호 되먹임을 초고 평가 단계에서 활용하였다. 이 단계에서는 앞의 두 단계에서 활용하였던 짝지어 되먹임을 주고 받는 1:1 방식이 아니라 6–7명으로 구성된 조 안에서 발표자가 발표를 하고 나머지 조원들로부터 평가와 되먹임을 받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해당 수업에서 초고를 발표하는 것으로 지정된 학생이 발표 수업 3일 전까지 초고를 이러닝 공간에 올리고, 그의 짝이 이에 대한 논평을 작성하여 수업에 참석한다. 수업 당일에는 초고 발표자가 15분 정도 자신의 초고를 읽으면 이에 대하여 짝을 이룬 다른 학생이 미리 작성한 논평문을 발표하여 발표한 초고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해야 할 쟁점들을 대략적으로 발굴한다. 이 과정에서 나머지 조원들(4–5명)은 초고 평가지를 활용하여 초고 발표자의 글을 평가하고 이어지는 15분 동안의 전체 토론 및 되먹임 시간에 초고 작성자에게 되먹임을 제공하거나 질문을 한다. 이러한 ‘초고 발표-논평문 발표-토론 및 되먹임’을 한 편의 초고에 대한 하나의 세션이라 할 때, 한 번의 수업에서는 1조당 2–3회의 세션이 되풀이되어 2–3편의 초고가 검토되었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이전의 수업, ‘논평문 쓰기’에서 타인의 글을 논평하면서 저자가 정당화의 과제를 완수하였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준들(명확성, 유관성, 타당성, 올바름, 논의의 폭과 깊이)을 학습하였는데, 초고 평가지는 이에 대한 응용이었다. 즉, 이 다섯 가지 기준을 조원의 글에 적용하여 어떤 지점을 강화한다면 저자의 논지가 더 정당화될 것인지 되먹임을 주도록 하였다. 평가지 안에는 이 다섯 가지 기준에서의 각기 다른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구체화된 예시 문장들을 제공하여 평가자가 보기에 피평가자 글의 질적 수준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문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컨대, ‘올바름(건전성)’의 기준을 얼마나 충족시키는지 평가하도록 네 개의 질적으로 다른 세부항목들, ‘명백히 잘못된 전제를 사용하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제를 사용하였고 그 전제를 사용한 것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제를 사용하였고 그 전제를 사용한 것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 정당화가 성공하였는지 잘 모르겠다,’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된 근거들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다’ 를 나누어 제공하고 피평가자의 글이 어느 수준인지 해당하는 칸에 √ 표시하게 하였다. 이외에 알려주거나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경우 평가지에 적어두었다가 되먹임 시간을 활용하도록 독려하였다. 평가자로 참석한 조원들은 평가지를 활용하여 수업 중에 구두로 되먹임을 주었다. 조별 수업이 끝날 때 동료 평가자들은 그날 작성한 평가지를 모두 제출하였다. 교수자는 발표 초고와 함께 동료들이 작성한 초고 평가지들을 검토한 이후 다음 수업 때 교수자 되먹임과 함께 이를 피평가자에게 제공하였다. 이는 조별 수업 중에 이루어진 평가들이 정당했는지를 점검하고 평가자들의 성실도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수업 일정에 따라 각 학생들은 자신의 초고 발표 후 3–4일 후에 동료들이 작성하였던 초고 평가지를 받아보았고 이로부터 10일 간의 퇴고 기간을 거쳐 최종 학술적 에세이를 교수자에게 제출하였다. 이미 초고 발표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에 학생들이 최종 제출한 글들은 퇴고를 거쳐 형식을 모두 갖춘 완성된 글들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문이나 각주를 통해 초고 발표 수업 때 조원들로부터 지적 받았던 사항들을 보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제출한 학술적 에세이의 주제들과 소재 분류는 Table 1과 같다. 최종 제출된 에세이 주제들의 특징을 분석해 보면 학생들이 글쓰기 소재로서 자신들의 관심사를 추구하되 이를 학술적으로 탐구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임의적인 방식이나 학생들이 택했던 글의 소재별로 4가지로 분류해보면 고전적 토론 소재, 국내 시사 관련 소재, 십대 문화나 하위 문화 관련 소재, 과학 관련 소재로 분류할 수 있다. 고전적 토론 소재란 토론 관련 서적들에서 이미 널리 다루고 있는 소재로서 성매매 합법화,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등 교과서적인 논지들이 많은 서적에서 소개되고 있는 소재이다. 국내 시사 관련 소재는 갑을 관계, 독도 영유권 등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논의되지만 토론 주제로서 여러 교과서에서 다루지는 않는 문제들, 십대문화•하위문화 관련 소재는 K-pop과 같이 십대, 혹은 젊은이들의 문화 혹은 의과대학 문화와 같이 특정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문화를 소재로서 다루는 경우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과학 관련 소재로는 기후변화나 진화생물학 등 과학적 소재를 다루는 에세이를 분류하였다. 그 결과 고전적 토론 소재는 4편에 그친 반면, 시사 문제는 6편, 십대문화•하위문화는 8편, 과학 관련 소재는 6편으로 분류되었다. 나머지 2편은 기타로 분류되었는데 문학의 가치와 법적 처벌 이론 등 다소 개념적 주제들을 다루었으므로 위의 소재 분류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의 효과를 교과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기술(description)에서 확인하고, 이를 앞 서 제시된 도전들에 대한 성공적 대응 여부로 분석할 수 있다. 한 학기 수업 중, 마지막 수업시간은 성찰적 나눔의 시간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3회의 조별 초고 발표와는 구분되는 수업으로서 오로지 학생들의 소회를 나누고 이를 추후 글쓰기 발전의 바탕으로 만들도록 고안된 시간이었다. 학술적 에세이를 작성하며 3 단계에 걸쳐 동료평가 및 상호 되먹임을 주고받는 시간은 건설적인 기회로 활용될 수 있지만 동시에 학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평가를 주고 또 이를 받도록 하므로 심적인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전 과정의 경험을 성찰하고 자기 안에 통합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메모카드를 나누어 준 후 ‘학술적 에세이를 작성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혹은 ‘학술적 에세이를 작성하며 어떤 점에 보람을 느꼈는가?’에 답하도록 하였다. 이 답변을 개인이 수업 중 개별 작성 후 소그룹 안에서 먼저 발표와 논의를 하고, 수업이 끝날 때 익명으로 제출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수업 중 나눔의 자료로 쓰인 메모카드 글을 질적 자료로 활용하여 교육과정에 대한 학습자의 평가의 일환으로서 분석하였다. 학생들의 답변은 난관과 보람에 관하여 질문한 바에 따른 수업 전반에 대한 평가 내용이었으나 그 중 상당수는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었고, 본 논문에서는 전체 답변들 중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에 관하여 언급한 자료에 한정하여 분석하였다. 총 26명의 참석자로부터 26장의 메모카드가 수거되었으나, 여러 장의 메모카드를 작성한 학생도 있으므로 모든 참석자가 제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응답자들 연령의 중앙값은 19세였으며, 성별은 모두 여성이었다.
학생 피드백을 살펴보면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의 과정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부터 독자를 상정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짝, 혹은 조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되먹임을 받음으로써 수집된 의견과 질문을 바탕으로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는데, “친구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글을 수정할 때 유용할 것 같다,” “[다른 이에게 지속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초고를 쓰고 나서 독자의 반응을 바로 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와 같이 답변하였다.
수업 중 구조화된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의 기회를 줌으로써 결국 수업이 학생 주도 학습이 되었다는 점을 피드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교수자가 단독으로 강의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업이 많은 점에서 좋았다. 특히 학생들끼리 발표하고 의견을 줄 때 집중할 수 있다.”
동료평가와 되먹임을 수행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는 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매 수업마다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집중도를 높인다는 점을 학생 주도적 수업의 장점이라 꼽을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학습자에게 과도한 부담이자 피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유의할 만 하다. 의견으로 “수업이 알찬 것 같긴 하지만 매 시간 다른 사람의 글을 열심히 듣고 평가를 해야 해서 진이 다 빠졌다,” “짧은 시간 내에 다른 사람의 글을 다섯 가지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이 힘들었다,” 등이 있었다.
되먹임과 이에 대한 대응 과정은 결국 설득과 토론으로 이어지므로 이 과정에서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면적인 비판적 의사소통 연습을 할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동기들에게 지적 자극을 받으며 참여하였고 이를 통해 의사소통 능력이 계발됨을 확인하였는데, “동기들이 논리적이라 감탄하였고 또 다른 사람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의문점을 바로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다,” “토론 능력이 향상된 것 같다. 이과 [출신]이라서 항상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와 같이 답변하였다.
한편 비판적 의사소통 과정은 학생들에게 심리적 긴장을 발생시키기도 하였다.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에 대한 부정적인 되먹임을 주는 경우, 저자로서 학생들은 낙담하기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적절한 되먹임 방식, 그리고 수용 방식을 학습할 기회가 되었다. 자신의 글이 동료 평가와 되먹임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저자로서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러한 학생들 또한 되먹임 자체가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점은 인정하였다.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는 내용인데 독자들을 설득해야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7페이지 안에서 모든 이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안 문제 설정부터 초고 발표까지, 짝꿍[평가자]에게 내 의견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서 답답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좌절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피드백[되먹임]은 유용했다.” 등의 답변이 있었다.
고 찰
글쓰기는 고단한 작업이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학생들은 연관된 많은 자료를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이를 자기 안의 통합적 지식으로 구성해야 한다. 독자를 상상하며 본인이 이해한 바와 주장하고 싶은 바를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글을 다듬어 타인이 읽을 만한 글로 만들고자 한다면 또 다시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 작업이 괴로울뿐더러 여타의 시험처럼 정답과 오답이 분명하게 나뉘지도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글이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음에도 중도에 포기하여 퇴고를 멈추고 글을 제출하곤 한다. 종종 형식적으로도 완성되지 않은 글을 제출하기도 한다. 첨삭과 되먹임이 없다면 학생들이 점차로 독자를 잊어가고 어찌되었건 과제물은 제출했다는 사실에만 안주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교과목 진행 중에 학술적 에세이를 작성하여 학기 말 시험을 대신하여 이를 제출하는 경우, 학생들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한 것이기 때문에 독자의 반응을 제공하여 주는 것은 학습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업 진행에서는 이러한 한 편의 글들을 기말 과제물로서 받기 때문에 학생과 이후 상호작용을 갖기 어렵고, 이 글에 첨삭지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 편의 학술적 에세이를 완성해 나가기 위한 단계별 과제들을 제공한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교과목에서와 같이 학생이 지속적으로 과제를 받는 교과목의 경우 이에 대한 되먹임 또한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단계적 되먹임의 장점을 교수자들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자가 되먹임을 제공하는 것을 돕는 교육적 장치들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글쓰기의 전 과정에서 되먹임을 주기보다 1–2번의 제한된 횟수로 되먹임을 주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경우 각각의 단계별 과제에 대한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활용하여 도전을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교과목 수행의 결과와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기술을 분석했을 때, 글쓰기 수업에서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도입하는 것은 분명한 교육적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보인다. Glynn 등[11]은 동료 학습(peer assisted learning)에서 나타나는 효과로서 학습 환경, 학문적 교류, 의사소통과 모델링을 열거하였다. 평가 루브릭을 활용하여 평가자 역할을 수행하고 적극적 독자로서 글의 부족한 지점이 무엇인지 알려주면서, 해당 수업에서의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에 참여한 학생들 또한 동료 학습에 비견할 만한 상호작용을 하고, 비슷한 교육적 효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 중,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제출한 학술적 에세이 주제 분류(Table 1)를 보면, 학생들이 고전적 토론 소재에 갇히기보다 본인들이 관심 있는 현안 문제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탐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정립된 논지들을 수집하는 것 이상의 자율적 학습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다양하면서도 학습자 선호가 반영된 소재 선택이라는 현실은 동료 평가와 되먹임이 유용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동료집단은 서로의 글을 읽고 내용적으로도 좋은 되먹임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K-pop의 현황이나 청소년 문화 등에 관한 글을 쓸 때, 교수자가 줄 수 있는 되먹임과 또래집단에 속하는 동료들이 주는 되먹임은 다를 수 있다. 상호 되먹임의 활용은 이 두 가지 되먹임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만든다. 학생들은 교수자 1인으로부터 평가를 받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자신의 동료 평가자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었으며 독자에게 어떤 점이 모호하게 보이는지 알고자 더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서로의 학습을 도와주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다. 이러한 경험은 기초적이고 예비적인 단계에서 학문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리라고 기대된다. 또한 상호 되먹임을 통한 상호작용의 촉진은 의사소통과 모델링의 효과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본 교과목은 글쓰기 표현만을 교육 내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와 종합적 의사소통 교육을 학습목표로 삼았다. 서로의 글을 평가하고 질문을 제기하며, 또 이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학생들은 다면적인 의사소통을 연습할 수 있었다.
평가와 되먹임 제공을 하면서 학생들은 부분적으로나마 교수자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를 통해 학습성과를 더 잘 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초고 평가 및 되먹임 제공에서 한 명의 학생은 총 5명–6명에게 동일한 평가 루브릭을 활용하여 되먹임을 제공하였다. 이 루브릭은 이전 강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며 교수자가 최종적으로 평가에 활용할 루브릭이기도 하므로 학습성과를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효과를 갖는다. 강의로 들은 바를 외우거나 피상적으로 판단할 때보다 강의 내용이 구체화된 평가 루브릭을 타인의 글들에 직접 적용하여 5번–6번 정도 평가와 되먹임에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학습을 유도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학습 유도 효과는 글쓰기에 관한 관심과 역량 차이가 상당하여 몇몇 학생이 중도에 진지한 학습을 포기하고 수동적으로 과제물만 제출할 수도 있다는, 의예과 글쓰기 수업이 직면한 위험을 관리하는 데에 특히 유용하였다. 모든 학생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완성도를 갖춘 글을 최종적으로 제출하였고, 매 수업에 집중하였다.
글쓰기 수업에서 특히 주효했던 동료평가와 상호 되먹임의 장점은 저자가 글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이를 꼼꼼하게 읽어줄 독자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소논문과 같은 학술적 글을 처음 연습하는 학생들에게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이다. 그들은 작성 중인 글이 난삽하지 않은지, 이전 문장과 현재 문장의 논리적 고리는 분명하게 제시되었는지, 모호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는지 가상의 독자가 되어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한다[14]. 수업 중에 짝이나 조원들의 되먹임을 받을 것을 예상하면서, 그리고 기존에 받은 되먹임들을 성찰하면서, 학생들은 이 작업을 꾸준히 수행하였다. 학생들은 초고 발표 수업에서 동료들로부터 받은 되먹임을 반영하여 개선된 형태로 최종 제출을 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기왕에 편차를 보이던 글쓰기 역량 수준과 상관 없이 관찰되어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이 낙오자 발생을 방지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마지막 수업 시간 학생들 간의 대화와 제출된 메모카드 안에서도 그들이 글을 쓰는 작업 중 끊임없이 독자와의 가상적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필요를 인식하였고 그 과정에서의 심리적 압박을 해소하는 방법 또한 강구해야 함을 인식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료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통해 한 명의 교수자가 혼자서 모든 학습자에게 되먹임을 제공할 때보다 더 많은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앞서 기술하였듯이 각 단계에서의 되먹임을 혼자서 충분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는 글쓰기 교수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만일 학생들이 상호적으로 평가와 되먹임을 제공하게 하고 이를 검토하여 부가적인 되먹임을 주는 것만으로 교수자의 역할을 한정하는 경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되먹임을 주면서도 교수자의 부담을 어느 정도 경감시킬 수 있다. 또한 객관적 루브릭을 제시하고 이를 활용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학습성과를 더 잘 이해하게 돕고 평가의 객관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동료평가와 상호 되먹임을 수업 안에 통합시킴으로써 매 단계 수행에 관한 되먹임이 시간 지연 없이 제 때에 주어질 수 있다. 되먹임의 효과는 시간 지연이 길어질 경우 감소한다[10]. 그런데 교수자 단독으로 필요한 모든 되먹임을 충분한 정도로 주고자 하는 경우, 요구되는 되먹임의 양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간 지연이 생기게 된다. 학생들 내의 동료 평가 및 상호 되먹임의 활용은 이 지연을 감소시켰고, 결과적으로 각 단계의 수행과 평가, 되먹임이 형성평가로 쓰일 수 있게 하였다. 교수자는 동료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각 학생의 수행과 발달을 확인할 수 있고, 동료 평가에 덧붙여 본인의 평가를 제공하면서 학생들이 수정과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의예과 신입생 중 26명에게 제공한 한 쿼터 동안의 수업 경험을 성찰한 것으로 그 경험 자체가 제한된 시간 동안 특정한 그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정된 것이기에 일반화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특히 대학교육을 막 받기 시작한 전국 최상위권 성적의 입학생들이 특별한 학구열로 수업에 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분명한 학습 촉진 효과를 가져왔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현안 문제 설정이나 개요 작성 단계, 그리고 초고 발표 단계에서까지도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던 몇몇 학생들마저도 동료 평가 및 되먹임의 도움을 받아 최종 결과물은 한층 발전된 형태로 제출하였고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표현하였다. 이는 한 명의 교수자가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공하기는 어려운 종류의 학습 진흥의 효과이다. 요약하자면, 의예과 글쓰기 교육에의 동료 평가 및 상호 되먹임 도입은 학생들의 수업 몰입과 학습을 촉진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 쉬운 글을 쓰도록 독려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글쓰기 교육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업 실행에서의 장애들에 부딪혀 이를 의학교육에 접목시키지 못하거나 불충분하게 접목하고 있는 경우, 동료 평가와 상호 되먹임의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