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급성 간부전(acute liver failure, ALF)은 갑작스런 간 기능의 저하로 간성뇌증과 혈액응고장애의 특징적인 소견을 보이는 질환으로, 기존 간질환이 없던 환자가 광범위한 급성 간세포 괴사가 일어나 간성뇌증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기저 간질환이 있는 만성 간질환 환자가 급성 악화를 보이는 경우는 acute-on chronic liver failure (ACLF)로 따로 구별하여 정의하고 있다[1].
이러한 ACLF는 다양한 간질환 상태에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국내에서 시행된 ALF의 원인에 대한 전향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성 B형 간염(chronic hepatitis B, CHB)이 약 40%로 가장 흔한 원인이었고, 그 다음이 한약으로 인한 원인 24%, 약제 유발성 원인 9%,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약 20%였다[2]. CHB가 국내 ALF 원인의 약 40%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이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ACLF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ACLF가 발생한 환자에서는 기저 간질환의 종류, 유발 요인, 장기 부전의 종류 등에 따른 다양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내과적 치료로도 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경우에는 간이식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간세포암(hepatocellular carcinoma, HCC)의 경우, B형 간염의 유병률이 높은 국내에서는 2012년 기준 간암으로 인한 사망이 10만 명당 11,355명(15.4%)으로 암 사망률 2위를 차지할 만큼 높다[3]. HCC의 치료는 수술적 절제가 가장 예후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병소의 개수, 위치 및 기저 간기능 등의 장애 요인으로 인해 수술적 절제의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4]. 특히 바이러스성 간염과 연관된 HCC의 경우 동반된 간경화 때문에 간 예비능이 저하되어 HCC 진단 당시에 약 20%의 환자만이 수술적 절제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80% 이상의 HCC가 B형 간염과 관련하여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수술적 절제가 불가능하고 만성 간질환이 동반되는 많은 경우의 HCC에 있어 이환된 환자의 간을 완전히 제거하고 건강한 공여자의 간을 이식하는 간이식은 HCC의 완전 제거 및 기저 간질환의 치료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5].
저자들은 단일 결절의 조기 간세포암(very early or early HCC)을 동반한 CHB 환자가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임의 중단함으로써 유발된 ACLF 증례에서, 항바이러스제의 재 투여를 포함한 내과적 집중치료에도 지속적인 악화 소견을 보여 응급 생체 간이식(living donor liver transplantation, LDLT)을 시행하고 간부전 및 간암이 성공적으로 회복된 사례를 경험하여 이를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48세 남자 환자, 2005년 CHB 및 간경화 진단받은 뒤 2008년 12월부터 엔테카비어 0.5 mg 복용하여 치료하던 중 2013년 9월부터 자의로 내원하지 않고 치료를 중단하였다. 이후 내원 1개월 전부터 피로감 증가하고 3일 전부터 황달이 발생하여 2014년 12월 26일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환자는 또한 고혈압 과거력이 있으며 음주력 및 흡연력은 없었고, 건강 보조식품 복용 이력도 없었다. 문진 소견에서 피로감 및 전신 통증 호소하였으나 정신상태는 명료하였고, 활력징후상 발열 등의 특이소견은 없었으며 이학적 검사에서 공막 및 전신에 황달 소견이 보였다. 내원 당시 시행한 일반 혈액검사상 백혈구 8,230/μL, 혈색소 15.0 g/dL, 혈소판 119,000/μL으로 thrombocytopenia를 보였다. 일반생화학검사에서는 크레아티닌 0.7 mg/dL, 총단백 6.3 g/dL, 알부민 2.7 g/dL, 아스파라진산 아미노전이효소 324 IU/L (upper normal limit [UNL], 40 IU/L), 알라닌 아미노전달효소 162 IU/L (UNL, 40 IU/L), 총 빌리루빈 20.72 mg/dL (UNL, 1.2 mg/dL), 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 341 IU/L, gamma-glutamyl transpeptidase 92 IU/L로, 저알부민혈증 및 총 빌리루빈 을 포함한 간수치의 상승을 보였다. 혈액응고검사상 prothrombin time (PT) 24% (34.2 sec)로 PT 증가 소견 보였으며, 종양 표지자 검사상 알파태아단백(alpha-fetoprotein, AFP) 40.3 ng/mL, protein induced by vitamin K absence or antagonist-II (PIVKA-II) 86 mAU/mL로 증가 소견 보였다. 암모니아 수치는 81 μg/dL로 정상 범위내였다. 바이러스 간염 표지자 검사상 HBsAg (+), HBeAg (+), anti-HBe (-), hepatitis B virus DNA titer 4,540,000 IU/mL, anti-hepatitis C virus antibody (-), hepatitis A virus IgM (-) 였다. 내원 당시 검사 소견에 의할 때 환자는 Child-Pugh C등급에 해당하였다.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에서는 segment 7 (S7)에 1.5 cm의 경계가 명료한 종괴가 관찰되었으며 동맥기에 조영 증강 및 문맥기에 조기배출을 보여 HCC에 합당한 소견을 보였다(Fig. 1).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간경화 소견이 있었으며 문맥혈전증, 비장비대 등은 관찰되지 않았으나 복강 내 다량의 복수를 동반하였다. 자기공명영상에서도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 결과와 동일한 부위에 HCC에 합당한 신호증강 소견을 보였다(Fig. 2). 또한 상부 위장관내시경 검사에서는 식도정맥류 소견도 관찰되었다.
영상소견 및 상승된 종양 표지자로 확인해볼 때, 환자는 CHB에 따른 간경변(the model for end-stage liver disease [MELD] score 30, Child-Pugh score 11 [등급 C]) 및 간세포암(modified Union Internationale Contrele Cancer [mUICC] stage I)으로 진단되었다. 또한 입원 당시 시행한 hepatitis B virus (HBV) DNA titer 4,540,000 IU/mL, 알라닌 아미노전달효소 162 IU/L, HBeAg (+) 확인되어 엔테카비어 0.5 mg 복용 다시 시작함과 동시에 보존적 치료 병행하였다. 그러나 보존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총 빌리루빈의 상승, 응고장애, stage III 간성뇌증 등 MELD score 30으로 비대상성 간부전 소견 보여 임상적으로 ACLF로 진단한 뒤 간이식을 고려하였고, Korean Network for Organ Sharing (KONOS) 등급 또한 2A로 평가되어 즉시 뇌사자 장기이식 등록을 대기하였다. Lactulose 및 branched chain amino acid 등의 약물 치료로 간성뇌증은 호전 양상을 보였으나 황달 및 응고장애는 지속적 악화 보였으며 뇌사자 장기이식 용이하지 않아 환자의 딸로부터 LDLT을 받기로 결정하였고, 입원 41일째, 간이식 시행하였다. 수술로 적출한 환자의 간 조직검사상 S7에 위치한 크기 1.2×1×1 cm인 한 개의 HCC가 확인되었으며 혈관 침범은 관찰되지 않았다. 종양이 없는 부분의 조직에서는 만성 간염 및 간경화 소견이 확인되었다(Fig. 3).
환자는 간이식 시행 후 특이 합병증 보이지 않았다. 수술 30일 후 시행한 일반 혈액 검사상 백혈구 7,850/μL, 혈색소 11.7 g/dL, 혈소판 250,000/μL을 보였고, 일반 생화학 검사상 아스파라진산 아미노전이효소/알라닌 아미노전달효소 26/21 IU/L, 총 빌리루빈 1.73 mg/dL로 현저한 호전 소견 보였다. 또한 PT 84% (12.6 sec), AFP <1.3 ng/mL, PIVKA-II 16 mAU/mL, HBV DNA titer <20 IU/mL로 역시 감소 소견 보였다(Fig. 4). 수술 후 약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hepatitis B immunoglobulin과 면역억제제(tacrolimus) 투여하면서 경과 관찰 중으로, 암 재발이나 특이 합병증 소견 보이지 않고 있으며 정기적인 추적관찰 예정이다.
고 찰
앞서 언급한 ACLF는 단기사망률이 50%–9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ACLF와 ALF는 기저 간질환의 유무에 따라 구별되므로 기저질환의 치료로 호전을 기대할 수 있는 ACLF를 감별해내는 것이 환자의 치료나 예후에 있어 중요한 일이나, 환자의 증례에 따라 이를 임상적으로 감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간신증후군이나 간성뇌증 등으로 진행한 상태에서 병원에 방문한 경우 더욱 그렇다. B형 간염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간이식이 필요한 간부전의 발생 빈도는 ACLF가 ALF보다 많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다. ACLF에서는 특정 병인에 대한 치료법이 있다면 시행하되, 동시에 급성 간부전 환자에 준하는 보존적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CHB 환자에서 자발적으로 또는 면역억제제의 사용으로 인해 간염이 활성화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면역 억제 상태에서의 간염 재활성화는 높은 사망률(5%–12%)을 보이고 있다[6]. CHB의 재활성화로 인한 급격한 간기능의 악화는 급성 B형 간염과 반드시 감별되어야 하며, 한편 A형 간염이나 E형 간염 등과 동반되어 급성 악화가 진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최근에 진행된 메타 분석 결과에 따르면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ACLF 환자에서 항바이러스제의 사용이 단기 사망률을 유의하게 낮추는 것으로 보고가 되었다[7]. 단기간 라미부딘의 사용이 면역 저하로 인한 B형 간염 바이러스 재활성화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으나, 장기간 사용이 예상되는 경우 약제 내성을 고려하였을 때 라미부딘보다는 엔테카비어나 테노포비어와 같은 강력한 약제의 사용이 추천되고 있다.
보통의 급성 간부전 환자들은 내원시 다장기 손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러한 환자의 효과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간내과, 이식외과, 신장내과, 중환자의학과, 신경외과, 신경과,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포함한 여러 전문팀의 협진이 중요하다. 내원 당시 신속하게 간부전의 원인에 대한 검사를 시행하고, 간손상의 중증도를 파악한 후 이에 따른 치료방침의 결정 및 간이식의 필요 여부와 적절한 시기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간이식은 ACLF의 경과를 호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치료법이지만, 공여자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모든 환자가 수혜 받지 못한다는 중요한 제한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제한점 외에도, ACLF에는 일정 부분 가역적인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이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바로 이식을 진행할 것인지, 혹은 이식 없이 우선 자발 회복을 기대해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만성 간질환에서 발생한 ACLF의 경우 간이식을 결정하는데 있어 간부전의 가역성 여부가 가장 중요한 반면, 비대상성 간경변에서 발생한 ACLF의 경우에는 ACLF에서 벗어나서 회복하더라도 장기 생존이 기대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간이식을 적극 고려해 볼 수 있겠다.
간세포암에서 간이식은 다른 치료법에 비해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HCC 및 HCC 전구 병변인 이형 결절을 확실하게 제거함은 물론 종양 재발의 근간이 되는 병든 간을 모두 제거할 수 있으며, 둘째, 간의 기능이 정상화 되어 정상 생활을 할 수 있고, 셋째,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간경변증 및 HCC의 원인인 B형 간염의 경우 90% 이상에서 B형 간염 소실을 유지할 수 있다[8].
초기 간이식은 모든 말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기대와는 달리 많은 환자에서 재발을 보였고 그에 따른 예후 역시 좋지 않아 간이식의 성적이 매우 불량하였다. 이후 만족할 만한 치료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대상자 선정 기준에 대하여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었고, 그 중 이탈리아의 Milan 그룹은 간이식 전 간 외 전이 또는 혈관 침습이 없고, 직경이 5 cm 이하인 단일 결절, 또는 개수가 3개 이하이면서 각 결절의 직경이 3 cm 이하인 다발성 결절을 가진 환자 군에서 간이식 후 4년 누적생존율 75% 및 무병생존율 83%라는 매우 우수한 성적을 보고하였다[9]. 이는 이후 Milan 척도라고 명명되어 대부분의 이식 센터에서 HCC의 간이식에 있어 대상자 선정기준의 표준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Milan 척도에 맞는 조기 HCC에서 간기능이 나쁜 경우에는 간이식을 일차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본 증례의 경우에는 비대상성 간경변과 함께 내원 당시 조기 간세포암이 동반되어 있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간이식을 고려한 경우였다.
간이식에 있어, 이론적으로는 뇌사자 간이식이 가장 좋은 치료가 되겠지만, 공여자의 부족이 심각한 국내의 경우에는 쉽게 뇌사자 공여를 기대하기 힘들다. 한편, 뇌사자 간이식과 달리 LDLT의 경우, 가족 간의 유대에 따른 기증이기는 하나 필연적으로 건강한 기증자의 수술 위험을 수반하게 되므로 수혜자에게 만족할 만한 치료 성적을 확보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윤리적 측면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2]. 본 증례에서도 환자가 2주간 KONOS status 2A로 등록되어 뇌사자 간이식을 준비했으나 적합한 뇌사자 공여간이 없어 간이식을 진행하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응급 생체 간이식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현실에서 뇌사자 간이식은 적절한 시일 내 기증자를 구하여 진행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만일 기증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면 이러한 측면에서 LDLT가 뇌사자 간이식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저자들은 간염바이러스 재활성화와 이로 인한 ACLF 소견으로 내원한 CHB 환자에서, 크기가 작은 단일 결절 HCC가 함께 동반된 것을 진단하고, 응급으로 시행한 LDLT을 통해 성공적으로 회복된 사례를 경험하였다. 결론적으로, 비대상성 간경변에서 발생한 ACLF가 보존적 치료로서 호전을 보이지 않는 경우 간이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간기능의 저하로 인해 수술적인 절제가 불가능한 HCC 환자에서 이식 척도에 맞는 조기 HCC의 경우에도 간이식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Child-Pugh C 등급에 해당되어 BCLC 병기 상 말기(BCLC stage D or terminal stage) HCC로 분류되는 환자에서도 간기능을 제외한 간암 자체가 Milan 척도 내에 해당된다면 간이식을 적극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10]. 간이식으로 인한 총 생존 기간의 증가는 이들 환자에서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들 환자에서는 HCC 및 기저 간경변증에 대한 치료로서 간이식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뇌사자 간이식 뿐만 아니라 LDLT의 가능성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