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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 정신, 세계의 무대에서 빛나다: 장명주 선배 인터뷰

Ewha spirit shines on the global stage: an interview with Dr. Myung-Joo Jang

Published online: October 13, 2025

Ewha Womans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Corresponding e-mail: wlwldbs@ewha.ac.kr
• Received: October 2, 2025   • Revised: October 9, 2025   • Accepted: October 10, 2025

© 2025 Ewha Womans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and Ewha Medical Research Institut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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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해외에서 활동한 선배의 경험을 통하여 현 의대생이 국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과정의 하나로 진행하였다. 대담자로 초빙을 받아 장명주 선생님과 줌을 통하여 면담을 진행하였다 (Fig. 1). 장명주 선생님은 1977 년 1월에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당해 년도 3월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Northwestern 대학에서 인턴을 시작하였다. 동 병원 재활의학과 레지던트를 마친 후, South Dakota 의 Sioux Falls 에 있는 병원에서 Medical director 로 활약하며 통증 전문의 경력을 이어왔다. 현재 북미주 이화동창회 이사장으로서 활동하며 서울병원 설립 기금 기부를 비롯하여 다방면에서 모교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본 대담은 2023년 입학생 정서화 학생기자가 진행하였고, 2024년 입학생 김지윤 학생기자가 정리하고, 기사를 작성하였다.
이화의대지(이하 EMJ): 선배님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수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장명주 이화의대 북미주 동창회 이사장(이하 장):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의대 북미주 의과대학 동창회 이사장 장명주라고 합니다.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재활의학과 의사로 긴 시간을 활동하였습니다.
EMJ: 선배님께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곧바로 미국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어떤 계기로 미국행을 결심하시게 되었는지, 또 처음 의사로서의 삶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장: 사실 유학을 결심하고 온 것이 아니었어요. 공부하려고 온 게 아니라 연애를 해서, 사랑을 따라 미국에 오게 된 것이죠. 한국과 미국의 의료 환경 차이를 처음부터 의식하고 온 건 아니었지만, 막상 와 보니 전혀 다른 환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겨우 한 달 만에 미국에 와서 인턴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제 인생이 크게 바뀌었어요.
EMJ: 많은 이민자들이 해외 생활 초창기에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께서도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차이에서 장벽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러한 적응 과정에서 이화의대에서 공부하신 내용들이 어떤 도움이 되셨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장: 이화의대에서 의사로서 성장하는 데 배운 지식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처음 인턴을 시작할 때에 지식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어,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TV를 켜면 광고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고, 동료들이 하는 말은 잘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건 쉬웠는데, 의학적 지식을 영어로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게 어려웠으니 이를 공부하느라 시간이 두세 배 더 걸렸죠. 그래서 저는 늘 정리하고 준비하면서 극복했습니다. 당직을 서다가 통화로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도 있어서, 해결이 안 되면 직접 환자 곁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파악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부분 해결되는 게 있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다 보니 조금씩 귀가 트이고, 어느 날은 갑자기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따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살면서 스며든 거예요. 언어라는 건 결국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내가 어떻게든 생존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장벽을 극복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제가 언어가 미숙해도, 제 노력을 알아주는 동료와 교수님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버티고 서서히 적응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EMJ: 재활의학이라는 분야를 선택하신 것도 미국에서의 경험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요.
장: 당시 한국에서 여성 의사들은 내과나 소아과를 많이들 택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특별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Northwestern 대학에서 인턴을 돌다가 재활의학을 처음 제대로 보게 되었어요. 그 병원이 세계적으로도 재활의학이 앞서 있었거든요. 병을 고치는 차원을 넘어, 환자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분야라는 점이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재활의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오히려 더 매료되었고, 이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EMJ: 미국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힘든 순간도 많으셨을 텐데, 의사로서 환자들을 대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환자가 있으신가요?
장: 저는 시카고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후에 사우스 다코타의 병원에서 메디컬 디렉터로 초청되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우스 다코타의 병원에서 메디컬 디렉터로 근무하던 도중, 중증 뇌손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처치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환자의 가족들이 저를 따로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상황이 위독해지자, 아버지의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연명치료를 계속할지 제 의견을 듣고 싶다고요. 신경외과나 심장외과의 의견을 듣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재활의학과 의사인 제가 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서 보다 더 통찰력 있는 조언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계셨습니다. 제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과 가족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을 드렸고, 그 가족은 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저의 말을 곱씹어 보며 그 조언이 가족들과 환자에게 잘한 것일까 하는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감사히도 가족들이 이후 손편지와 선물을 보내오시며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의사는 병만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는 존재라는 것을요. 그 경험이 제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EMJ: 여성 의사로서 차별이나 편견을 경험하시지는 않으셨을지도 궁금합니다.
장: 시카고에서는 인종도 다양하고 사람도 많아서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우스 다코타의 Sioux Falls로 갔을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주민의 대부분이 북유럽계 백인이었고, 저는 그곳에서 유일한 동양인 여성 의사였습니다. 걱정이 좀 들었지만, 차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재활의학이 꼭 필요한 분야였기에 협조적이었고, 다들 저를 필요로 했습니다. 저의 정체성 덕분에 재미있는 일도 있었죠. 티벳에서 온 환자가 있었는데, 다른 의사와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아 동양인 의사를 만나고 싶다며 저를 찾더군요. 미국 음식이 맞지 않는다기에 제 집으로 모셔와 라면을 끓여드렸는데, 너무 맛있다고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EMJ: 동문회 활동이나 한인 사회와의 교류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그리고 그것이 선배님의 커리어에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장: 처음 시카고에 왔을 때, 이화 동창회와 한인의사회를 통해 많은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제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후 사우스 다코타로 옮기면서 교류가 끊기기도 했지만, 우연히 시카고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시금 이화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나 뵌 선배님들은 각자 다른 전공과 수련 경로를 밟아왔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과 소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이화에서 배운 것이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굳건히 세우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화의대 동문회는 제게 늘 ‘친정 같은 곳’이었습니다. 남녀가 함께 다니는 학교에서는 여자들만의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기 쉽지 않은데, 미국에서의 이화의대 동문회는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과 연대감을 주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눈 대화들은 단순한 추억담을 넘어, 삶의 가치와 인간다움(humanity)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건설적인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가 북미주 의과대학 동창회 이사장으로서, 동문들과 함께 이대 서울병원 기금 마련 등과 같은 뜻깊은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그 연대의 힘 덕분입니다. 결국 동문회와 한인 사회의 교류는 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고, 외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긴 시간 동안 저를 지탱해 준 가장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EMJ: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선배님께서는 중요하게 꼽으시는 의사의 역량은 무엇인지 듣고싶습니다. 그러한 가치관을 어떻게 형성하셨는지, 또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 어떤 노력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 제가 미국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환자의 배경과 삶을 이해하는 것이 진료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단순히 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라는 환경에서의 생활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도 필요했습니다. 환자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결국 환자를 진정으로 치료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인들의 생활과 문화적 배경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의학적 지식과 삶에 대한 이해가 결합되어 가치관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동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힘이었습니다. 수련 시절 지도교수께서 “의사로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환자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알게 되었어요. 환자를 설득하고 공감하며, 환자의 삶의 질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었습니다. 의료진뿐 아니라 다른 직종과도 소통하며 함께 환자를 케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재활의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훈련 환경의 선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환자와 수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수련 프로그램 덕분에 재활의학에 대한 경험을 폭넓게 쌓을 수 있었고, 이는 훗날 제 진로를 결정짓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EMJ: 긴 세월 동안 의사로 살아오면서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장: 무엇보다 열정(passion)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꼭 가지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는 환자를 돌보다 보면 너무 쉽게 나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학생 때부터 스스로를 힐링할 수 있는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또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언어와 문화를 깊이 익혀야 합니다. 단순히 영어를 공부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환자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EMJ: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힘든 의과대학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흔들리는 학생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이 길을 걸어오셨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되새기며 긴 세월동안 최선을 다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장: 사실 저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선택이 얼마나 귀한 조언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환자들의 고통을 매일 마주하면서, 한 인간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는 일이 단순히 그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결국 저를 돌보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없었습니다.
이 길에서 중요한 것은 매 순간에 대한 열정과 자기 돌봄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을 돕는다는 자부심은 큰 힘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학생 때부터라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꼭 마련하고, 작은 방식으로라도 자신을 치유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또, 인간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만큼 할 수 없는 일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영적인 지침(spiritual guidance)을 통해 한계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개인적으로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MJ: 긴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EMJ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 재미있게, 열정을 다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멋이 있어야 하고, 남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즐길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분명 힘들지만, 동시에 남을 도울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길입니다. 그 보람을 잊지 않고 자신을 돌본다면, 분명히 끝까지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장명주 선배님의 의사로서의 가치관과 삶의 가치관이 매우 감명깊게 다가온 인터뷰 였다. 특히 “의사는 타인의 삶을 ‘care’ 하는 직업이지만 이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삶을 ‘care’ 하게 되는 직업” 이라는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화 의대가 세계로까지 연결이 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활약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자랑스러운 이화의대 후배로 성장하기 위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Authors’ contribution

Conceptualization: SJ, JK,

Interview: SJ

Writing–original draft: JK

Writing–review & editing: SJ, JK

Conflict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Funding

None.

Data availability

Not applicable.

Acknowledgments

The authors appreciate Dr. Myung-Joo Jang for generously sharing her time.

Supplementary materials

None.

References

None.

Fig. 1.
Screenshot during Zoom interview with Dr. Myung-Joo Jang (A) by student reporter, Seohwa Jeong (B) on October 1, 2025.
emj-2025-00920f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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